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아버지 서재현(徐載賢)옹의 영정 앞에서 그는 목이 멘 채 고인의 삶을 회상했다.
전날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서옹은 임시정부 의정의원 겸 내무의원을 지낸 부친 서병호(徐丙浩·1885∼1972)선생과 함께 항일운동을 벌인 공로로 2대에 걸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애국지사.
그는 또 차남 경석씨의 시민운동을 든든히 받쳐준 후원자였다. 시민운동이 나라의 정의를 세울 수 있는 일이라는 믿음과 아들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항의시위를 할 때면 80세가 넘은 아버님도 피켓을 드셨지요. ‘나 같은 늙은이들이 더욱 앞장서야 한다’던 아버님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삶은 나라와 남을 위한 봉사와 사랑, 그리고 철저한 겸양의 미덕으로 일관됐다.
광복 뒤 해군준장 시절 양말이 해지면 전구를 끼워 기워 신었고 공무로 외국출장을 가면 늘 남은 경비를 국고에 반납했다.
전역한 뒤 국영기업체인 한국기계공업 사장까지 맡았지만 결혼 18년이 지나서야 은행융자를 끼고 14평짜리 문화주택을 마련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94년에야 자녀들이 알았을 정도로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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