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 2억9천만원 탈취범행]악몽의 12시간 인질극

  • 입력 1999년 7월 19일 18시 27분


탈옥수 신창원의 범행은 알려진 것과 달리 악랄했다. 가족을 인질로 한 강도행각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5월31일 0시반. 신창원은 부유층이 많이 사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S빌라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신은 현관문을 따고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직감하고 4층 옥탑의 다락방을 통해 3층으로 내려가 복면을 했다.

방에는 가장으로 보이는 50대 남자와 부인(46), 딸(13) 등 네가족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신은 여유있게 각 방을 돌아다니며 값 나가는 물건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안방 장롱에서 신은 뜻밖에도 1만원권 4000만원과 양도성예금증서(CD)를 찾아냈다. CD는 5000만원짜리 10장이었다.

신은 집 주인의 지갑을 열어 그가 서울 강남에서 고급 예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로 서울강남경찰서 치안행정자문위원인 것을 알아냈다.

신은 곧바로 김씨와 부인, 딸을 깨워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신은 흉기로 이들을 위협해 손발을 묶고 나서 복면을 벗은 뒤 “나는 신창원이다”고 밝혔다.

신은 이어 “돈을 내놓겠느냐 아니면 목숨을 내놓겠느냐”고 협박한 뒤 “집 값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8억원쯤 된다”고 말했다.

신은 “그러면 재산이 최소한 80억원은 될테니 20억원을 내놓아라”고 다그쳤다.

김씨는 “그런 큰 돈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신은 “할 일이 있으니까 5억원을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라”고 위협하며 CD 10장을 현금으로 바꿔 올 것을 요구했다.

김씨 가족에게 평생 기억하기 싫은 고통의 밤이 지속됐다.

밤을 새운 신은 31일 오전 9시경 김씨를 인질로 잡은 뒤 부인과 딸을 시켜 CD를 현금으로 바꿔 오게 했다. 집을 나선 부인과 딸은 은행 3,4곳을 다니며 CD를 현금으로 바꿨다. 은행에서 바꾼 현금이 모두 2억5000만원이었다.

김씨 부인은 신에게 전화해 “은행에 현금이 이것밖에 없다. 더 바꾸려면 시간이 좀 더 걸려야겠다”고 말했다.

신은 “됐으니 빨리 돌아오라”고 말했다.

신은 빌라에서 찾아낸 현금 4000만원과 CD를 바꾼 2억5000만원 등 2억9000만원을 배낭속에 넣고 집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김씨의 BMW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신은 김씨와 딸을 뒷좌석에 태우고 자신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400m쯤 가다 신은 차를 세웠다. 신은 김씨에게 “도난당한 사실을 신고하면 아이들은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뒤 이들을 내리게 하고 승용차를 몰고가다 길거리에 버린 후 유유히 사라졌다. 김씨 가족에게는 일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12시간이었다.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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