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또 “신은 예상과 달리 우리 가족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데 유감을 표시했으며 인질로 잡혀있는 동안 내가 잠시 잠을 잔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19일 오후 경찰조사 직후 동아일보 기자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털어놨다.
김씨가 밝힌 신의 범행전말은 다음과 같다.
5월31일 오전 1시경 신이 김씨가 사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S빌라 4층 옥탑 다락방을 통해 3층으로 들어왔다. 당시 김씨와 김씨의 부인 차모씨(46) 큰딸(13) 등 가족 4명은 안방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인기척에 놀란 김씨가 흘끔 봤더니 양손에 칼을 들고 복면을 한 신이 “꼼짝 마”라고 소리친 뒤 한살도 안된 갓난애를 제외하고 김씨와 부인, 큰딸 등 3명을 노끈으로 묶었다. 신은 이어 “내가 누군지 아느냐. 탈옥수 신창원이다. 딴 맘 먹지 마라”고 겁을 줬다.
신은 각 방을 돌아다니며 값 나가는 물건을 골랐다. 안방 장롱에서 현찰 4000만원과 양도성예금증서(CD)가 발견되자 신은 방안에 마구 던졌다. 지갑에 있는 김씨의 강남경찰서 치안행정자문위원 신분증도 찾아냈다.
냉정을 되찾은 김씨가 신에게 말했다.
“신형, 당신 고향이 김제 아니냐. 내 고향은 전주다. 고향 사람끼리 만났는데 이러지 마라. 당신에게 대항할 처지가 안된다. 아내와 딸을 풀어달라.”
신은 김씨 가족을 풀어주면서 물었다.
“이 집이 얼마냐.”
“7억∼8억원쯤 되겠지.”
“그럼 재산이 80억원은 되겠네.”
김씨는 재산이 적다고 하면 해칠 것 같아 “그 정도 된다”고 대답했다..
“그럼 20억원을 내놔라.”
“20억원을 만들 능력은 없다.”
“그럼 5억원은 줄 수 있느냐. 가족을 다치게 할래, 5억원을 내놓을래.”
“5억원을 주겠다.”
‘협상’을 마친 뒤 신은 여러가지 말을 꺼냈다. 신은 탈옥과정과 성장과정, 사회적 불만 등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신은 자신의 아버지를 말할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신의 태도를 본 김씨는 용기를 얻었다. 김씨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자 신은 순순히 화장실에 가도록 허락하고 화장실에 가는 김씨를 따라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김씨 역시 긴장이 풀렸는지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신은 “그럼 엎드려 누워라”면서 지압을 해줬다.
김씨는 새벽 5,6시경 깜박 졸다 깨 “신형,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살지”라고 말했다.
“말씀은 고마운데 내가 할 일이 있다.”
“그게 뭔가.”
“2,3개월 있으면 알게 될 거다.”
김씨는 신이 ‘할 일’이라고 말한 것은 수기를 공개하려고 한 것으로 추정했다.
오전 9시가 되자 신은 김씨에게 돈을 찾아올 것을 요구했다.
김씨는 부인이 상당히 힘들어해 좀 안정을 시켜주기 위해 부인에게 시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부인이 도중에 쓰러질 것도 같아 딸을 함께 보냈다.
신은 딸에게 “너 오늘 학교 못간다”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돈을 찾으러 나간 부인 차씨는 “은행에 2억5000만원밖에 없다”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했다.
“하 참, 하 참, 5억원이 안되면 다른 사람이 더 다쳐야 되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신이 그냥 그 돈만 가져오라고 했다.
그래서 부인과 딸이 돈을 가져왔고 신은 김씨에게 차를 직접 몰라며 뒷좌석에 탄 뒤 말했다.
“당신도 자식이 있는데 몸조리 잘 하고 신고하는 것 알아서 하세요.”
신고하면 자식을 해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김씨는 “걱정 마세요”라고 신을 안심시켰다.
이날 오후 12시반경 김씨 집에서 40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신은 김씨와 김씨의 딸을 내리게하고 “자동차는 그대로 둘 테니 걱정말라”고 말했다.
10분 뒤 김씨 집에서 300m 가량 떨어진 신이 사라진 반대편 방향에서 자동차는 발견됐다. 김씨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11시간반이었다.
〈하종대·김상훈기자〉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