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공안부 압수수색 표정]『하극상 아니냐』

  • 입력 1999년 7월 23일 23시 37분


검찰사상 처음으로 ‘서울지검’이 상급기관인 ‘대검’을 압수수색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검찰관계자들은 ‘서울지검의 12·12’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후 3시반경 서울지검 윤석만(尹錫萬)부부장검사와 이광형(李光珩)검사 등 특별수사본부 소속 수사관 10명은 미니버스를 타고 길 건너편 대검청사로 진입.

압수수색팀은 압수수색 자료를 담을 서울지검 직인이 찍힌 종이박스 10여개를 갖고 와 김각영(金珏永)공안부장에게 영장을 제시한 뒤 7층 공안부장실과 9, 10층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

○…‘기습’을 당한 대검 간부들은 압수수색 소식에 한결같이 참담한 표정. 당사자인 대검 공안부 관계자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냐”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

한편 당시 공안2과장이던 이준보(李俊甫)중수2과장의 사무실도 압수수색하자 상급자인 중수부 이종왕(李鍾旺)수사기획관은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항의.

○…이훈규(李勳圭)특별수사본부장은 오후 3시반경 대검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기자실을 찾아와 “사회일각에서 아직도 특별수사본부의 충정을 의심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압수수색은 대검의 비협조 때문에 실시된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한 것이었다”고 거듭 강조.

○…대검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 과정에서는 수사검사 사이에도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는 후문.

한 관계자는 “22일 밤까지만 해도 ‘검찰이 재주부리는 것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적잖아 압수수색이 어려울 것 같았지만 23일 오전회의에서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소개.

특히 김현철(金賢哲)씨 수사의 주임검사였던 이본부장이 “당시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하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며 고뇌 끝에 압수수색을 결정.

〈정위용·김승련기자〉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