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검찰」 변화물결 타나?…상명하복개념 엷어져

  • 입력 1999년 7월 27일 18시 56분


검찰에 심상치 않은 변화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대검과 인천지검이 경기은행 관련 수사진행을 둘러싸고 갈등과 대립을 보이고 서울지검은 상급기관인 대검을 압수수색했다. 대검과 일선지검의 ‘의견차이’가 대외적으로 표면화되는 것은 이전에는 생각하기도 어려웠던 일.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정말 달라지고 있는 모양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일부 ‘과격한’ 검사들은 검찰의 ‘혁명’이 시작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변화의 핵심은 검찰조직의 생명처럼 여겨져온 기존의 ‘상명하복(上命下服)’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 일선 검사들의 의식이 달라졌다. 검사들은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펼친다.

고급 옷 로비 의혹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최근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웃분들의 뜻대로 김태정(金泰政)전법무장관 부인을 일반인과 달리 처우했다가 검찰조직 전체가 비난을 받았다”며 “이제 수사는 내 원칙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대검공안부에 대한 검찰 초유의 압수수색도 ‘밑으로부터의 결정’에 따른 조치라는 점에서 ‘변화’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특별수사본부 소속 검사 11명은 23일 이훈규(李勳圭)본부장 방에 모여 이 문제를 논의했다. 2시간 가까이 격론을 벌인 끝에 이본부장이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찬성8, 반대3. 서울지검 특수1부장인 이본부장은 표결결과에 따라 그날 오후 전격적으로 대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또 이 사건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으러온 중견검사는 “나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일반인들과 달리 예우하지 말라”며 “진형구 전검사장도 엄정하게 처벌하라”고 수사팀에 요구했다.

이같은 변화는 최근 검찰이 처한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 중견검사는 “올해 초 대전법조비리 사건부터 시작해 특검제 도입까지 검찰의 위기를 자초한 것은 정치적 판단을 하는 수뇌부였다”며 “결국 검찰의 자존심과 위상을 되찾는 것은 우리 검사들에게 달려있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부장검사는 검찰의 세대교체도 변화의 한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검사직을 입신출세의 수단이 아니라 자아성취의 장으로 여기는 젊은 검사들이 직업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 자기 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면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변화의 모습, 그 자체도 여론을 의식하는 것” “소영웅주의도 경계해야 할 일” “어떤 꿈틀거림이 있지만 정체성 회복의 단초로 볼 수는 없다”는 법조계 안팎의 시각도 있다. 이들은 검찰의 변화를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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