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장은 자금난에 시달리던 기업의 회사채를 덤핑으로 헐값에 매입, 투신사에 채권담당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비싸게 팔아 목돈을 벌었다. 이훈규(李勳圭)서울지검 특수1부장은 “김회장은 현대금융시장의 봉이 김선달”이라고 말했다.
김회장의 채권매매 수법은 단순하다. 예를 들어 A기업이 표면금리 10%로 3년 만기의 100만원짜리 채권(債券·회사채)을 발행한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회사의 신용상태가 좋지 않거나 시중 자금사정이 어려우면 회사채를 인수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틈을 이용, 김씨같은 채권브로커들이 나서서 회사채를 싼값에 할인해 매입한다. 예컨대 A기업의 100만원짜리 회사채를 15% 할인, 85만원에 매입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실질금리(회사채 수익률)는 25%(표면금리 10%+할인율 15%)가 된다.
그러나 브로커들은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지 않고 투신사나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들에 할인율을 10%정도로 낮춰 90만원에 되판다. 브로커는 순식간에 5만원을 챙기는 셈. 영세기업에서 물건을 덤핑으로 매입해 백화점에 비싼 값에 파는 이치와 똑같다. 회사채 거래 규모가 1조원이면 500억원을 벌게 된다.다만 실제 매매과정은 기업 회사채 발행→기관투자가의 채권인수→브로커→다시 인수한 기관투자가→투신 증권 등 기관투자가의 채권매입 등 5단계를 거친다.
김씨가 실제로 ㈜신동방의 3년만기 보증 회사채 300억원 어치(표면금리 17%)를 매매하는 과정을 보자. 김씨는 IMF직후 자금사정이 어려운 신동방으로부터 실질금리 35%(표면금리 17%+할인율 18%)를 적용, 300억원어치 회사채를 불과 202억여원에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종금사를 통해 사고 팔고를 반복함으로써 합법거래로 가장했고 종금사는 2억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김씨는 국민투신 채권부장에게 1억원의 뇌물을 주고 할인율을 5%로 내려 267억원(표면금리 17%+할인율 5%)에 회사채를 되팔았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가만히 앉아서 65억여원을 번 것이다.
이런 농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높은 금리를 물게 되는 기업과 투신사의 투자자들이다.
이같은 회사채거래 비리사건은 국내 채권시장의 후진성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 채권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가격결정시스템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 미국의 재무성채권처럼 다른 채권값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지표채권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데다 채권시가평가제 등 채권값이 투명하게 결정되는 시스템이 자리잡지 못한 상태다.
채권시장은 거래소에서 전자결제시스템에 의해 투명하게 계약이 체결되는 주식시장과는 달리 매도자와 매수자가 일대일로 매매하는 장외거래(over the counter)시장. 따라서 브로커나 딜러 등 매매당사자나 매매시점에 따라 똑같은 채권이라도 매매가격이 큰 격차를 보이기 때문에 기관투자가가 브로커로부터 비싼 값에 매입한 뒤 뒷돈을 받더라도 들통날 가능성이 적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수형·이용재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