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대기업 맨']"요즘 일할맛 안나요"

  • 입력 1999년 9월 6일 19시 38분


대기업 샐러리맨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대기업의 부실운영이 경제위기를 불러왔다’는 일반 국민의 시각이 있는 데다 최근 기업해체와 변칙상속, 주가조작 등 악재가 속출하면서 예전의 ‘프라이드(긍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그룹해체에 곤혹

이들은 “한때 대기업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느꼈지만 요즘은 어디 가서 ‘명함’을 못내밀 정도로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한다. 이같은 분위기를 나타내듯 ‘프라이드’의 상징인 회사 배지는 이미 영업팀을 제외하면 착용자를 찾기 힘들다. 경쟁업체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가족’ ‘∼맨’ 등으로 붙여졌던 구호와 수식어들도 자취를 감췄다.

A그룹 무역영업부문에 근무하는 한 대리는 “직원들 사이에 ‘동요’하지 말고 ‘가요’하자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원진이 계속 “동요하지 말라”고 말하자 사원들이 “동요 안하고 가요나 팝송하면 되지 않느냐”고 비아냥댄다는 것.

그는 “입사 무렵엔 족벌경영이 없고 이미지도 좋은 ‘∼가족’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느꼈다”며 “그러나 요즘엔 모두 빠져나갈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사무실의 또다른 직원은 “하루종일 거래처로부터 돈달라는 전화독촉을 받는 것은 물론 중소기업에 쫓아가 ‘봐달라’며 빌어야 한다”며 한숨 쉬었다.

★근무시간 주식투자

다음달 합병을 앞둔 B사의 한 직원은 “요즘 회사분위기는 근무시간 중 반은 일하고 반은 주식투자에 신경을 쓸 정도로 산만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 자신도 현재 이직(移職)을 고려 중이라 솔직히 말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실토했다.

C그룹과 D그룹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C사의 한 직원은 “고객들로부터 하루에도 몇차례씩 ‘이름있는 증권회사가 주가조작을 하니 고객들은 누굴 믿고 투자를 하겠느냐’는 항의를 받는다”며 “정말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가시방석…이직 생각

D사의 한 직원도 “변칙상속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면서 대부분의 직원들이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불안한 상태”라고 말했다. 또다른 한 직원은 “몇년전까지만 해도 D사는 ‘∼맨’중에서도 ‘초일류’만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최근 적자와 사업환경변화로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상훈·이완배기자〉core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