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측은 긴장했다. 궁여지책으로 “거리에서 개헌서명운동을 벌이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아 가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봇물을 막겠다고 뒤늦게 호미 들고 나서는 격이었다. 그토록 정권이 두려워 하던 개헌이 87년에 여야합의로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국방부 앞에서 최근 벌어진 ‘이상한 시위’ 보도를 보면서 도로교통법을 들먹이던 구시대적 발상을 떠올리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국방부로선 골치 아팠을 것이다. 이른바 ‘양심수’의 군복무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 그리고 ‘군 폭력 희생자’ 유가족 협의회의 집회 등이 거의 매일 되풀이되고 있으니까. 법적 제도적으로 민원을 풀기 어렵고 원인불명의 사건까지 이제와서 해결하는 게 쉽지도 않다. 그래서 잦은 시위로 소음피해에 시달리는 국방부 인근 주민을 ‘설득’해 집회장소를 선점(先占)케 하고 군인들도 경비를 겸해 나서게 해 머릿수를 채웠다는 보도다.
▽무력으로 시위대를 쓸어버리지 않는 것만 해도 ‘애교’스럽지 않으냐고 우길 수도 있다. 그러나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규정된 기본적 자유의 하나다. 언론출판의 자유, 결사(結社)의 자유와 함께 민주국가냐 아니냐를 가늠케 하는 잣대인 것이다. 그러한 자유의 보장은 따지고 보면 정치가 국민의 사무침을 풀어주고 ‘사무치지 않도록’ 하라는 취지가 아닌가. 그래서 국방부의 이 작은 ‘맞불시위’는 결코 하찮은 일일 수 없다. 도대체 그런 발상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김충식 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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