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私생활 정보가 샌다]수사기관 정보요청 폭주

  • 입력 1999년 9월 10일 19시 19분


수사기관의 통신가입자에 대한 뒷조사는 끝이 없는 것일까.

몇년 전만 해도 유선전화에 대한 감청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인구가 급증하면서 수사기관의 정보요구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통신업체들이 “수사기관의 요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황당한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

대검찰청은 9일 본보의 ‘수사기관의 ID감청’보도와 관련해 “수사기관이 통신제한조치허가서 없이 E메일을 열람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는 해명자료를 냈다.

그러나 통신업체들의 말은 다르다. 경찰서 담당 직원이 경찰서장 명의의 단순협조공문만 제시하고 PC통신 가입자의 개인 인적정보뿐만 아니라 E메일 발송횟수, E메일 내용, 상대방 ID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이같은 정보를 요구할 때는 법원의 허가서가 있어야 한다.

휴대전화업체의 한 관계자는 “평소 안면있는 형사가 공문 없이 가입자 정보를 요구해 거부하자 우연인지 모르지만 다음날 사무실 앞에서 주차위반딱지를 떼는 일 등이 일어나 할 수 없이 자료를 넘겼다”고 털어놓았다. 정보요구는 수사과뿐만 아니라 정보과 형사가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는 것.

한 휴대전화업체가 기자에게 보여준 자료에는 ‘협조요청서’라는 제목에 ‘보안수사상 필요하니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란 문구와 함께 조사대상 휴대전화번호 10여개가 나열돼 있었다. 수사내용이나 통화내역을 조회하는 기간도 명시돼 있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이 문건 하나로 수십명 통신가입자의 통화내역을 마음대로 뒤지고 감시하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경우 ‘국가기밀’이란 이유로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고 자료를 요구해 통신업체에서 거꾸로 국정원에 “그런 자료를 요구한 적이 있는지” 전화로 확인하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진다.

수사기관에서 통신업체에 무리한 자료를 요구하거나 정보제공을 위해 기술개발까지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PC통신업체 A사는 얼마전 수사기관에서 가입자의 E메일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술팀을 동원, 비밀번호가 없어도 E메일 내용을 조회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후 수사기관은 △사용자가 주로 방문하는 사이트 △어떤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지도 알아봐달라고 요구했고 심지어는 인터넷에 접속한 이용자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확인해달라고 요구해 ‘기술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답변한 적도 있었다.

업체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과 통신비밀보호법에 어디까지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지 애매하게 돼있어 수사기관의 요구를 무작정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통신업체들은 아예 고객센터에 수사기관의 정보제공 요구를 처리해주는 전담직원을 두고 있다. 갈수록 수사기관의 정보요청이 늘어나 전담요원 없이는 이같은 업무를 처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범죄수사상 또는 국가안보를 위해 일부 통신가입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로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법절차를 무시하거나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 통신업체에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국민의 사적 자유를 보장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참여연대 박원순변호사는 “영장에 의하지 않거나 정확한 법규정을 지키지 않고 개인 사생활 정보를 열람하는 것이 문제이고 비록 영장에 의한다 하더라도 프라이버시 침해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학진기자〉jea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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