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을 쓰지 말 것.
2.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는 표현을 쓰지 말 것.
3. 한 편의 완결된 글로 쓸 것.
4. 어문 규정과 원고지 작성법에 따를 것.
5. 1600자 내외(띄어쓰기 포함, ±200)로 쓸 것.
▼〈인문계 공통〉사범대 제외▼
※다음의 제시문을 읽고 아래 지시에 따라 논술하라.
(가) 제시문 (1), (2)가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쟁점과 서로 다른 주장이 무엇인지 서술하고
(나) 제시문 (3)의 ‘나’가 ‘옹졸’한 이유를 제시문(1), (2)의 논지에 근거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 후
(다) ‘나는 얼마큼 적으냐’라는 자기성찰이 갖는 의의와 그 한계에 대하여 논술하라.
〈제시문〉
(1) 부당한 권력은 그 부당함에 맞서기를 꺼리는 개인들의 소극적이고 이기적인 태도 때문에 유지된다. 부당한 권력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불가피한 이유들을 나열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자신의 나약함이나 기회주의적 성격을 변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형태의 권력도 진정으로 확실한 윤리적 태도와 지성을 가진 개인을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외적 상황을 탓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과 안락함을 추구하려는 경향 때문에 개인의 지성적 판단력과 윤리적 책임의식이 약해지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끊임없는 자기성찰, 공공적 관심에의 시민적 참여만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부당한 권력을 약화시키는 유일한 힘이다.
(2)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자율적 활동이 보장되지 못한 억압적인 정치상황 하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우 적다. 그런 환경 속에서 개인은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에 따라 행동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소신이라든지 창의성이라는 것은 오히려 불편함이나 손해를 가져올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당히 관행에 따라 처신하는 행동이 몸에 배게 된다. 설사 자율적인 판단과 행동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그 범위는 매우 좁은 개인적 일상사 또는 소시민적 활동에 국한되게 마련이다. 나약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개개인의 윤리의식의 부족함에 있다기 보다 그들을 타율적인 존재로 만드는 비민주적 환경에 있는 것이다.
(3)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 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 수용소의 제십사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중략)…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성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전문)
▼〈사범대〉▼
※아래의 글들은 교사주도 지식중심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고전에서 발췌한 것이다. (가)와 (나) 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주장의 핵심을 요약하고, 그러한 주장을 구현하는 교육 방식이 현재의 학교교육에 적용되었다고 가정할 때 어떠한 가능성과 한계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논술하라.
(가) 교사가 학생에게 지리를 가르치려고 생각했다 하자. 그래서 그를 위해 지구의와 천구의, 그리 고 지도를 가져다주었다. 이 얼마나 많은 도구들인가. 어째서 모두가 대용품이어야 하는가. 어째서 처음에 대상 그 자체를 보여 주지 않는가. 대상 그 자체를 보여 주면, 당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아이도 잘 알 수 있을 텐데.
어느 아침, 태양은 그 빛나는 햇살을 뿜어 이미 그 나타남을 예고하고 있다. 아침놀이 펼쳐지고, 동쪽 하늘이 새빨갛게 물든다. 그 빛남을 바라보면서, 태양이 나타나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할 때부터 그는 기대에 가슴을 두근거린다. 밤사이에 생기를 되찾은 초록빛 들판, 거기에 쏟아져 내리는 금빛 햇살. 금빛으로 물든 들판 위에 떠오르는 아침 이슬이 보석보다 더 영롱하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넋을 잃게 되는 황홀한 30분으로, 그렇게 장엄하고 아름답고 감미로운 광경에 무관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이 맛보고 있는 감동으로 마음이 꽉 찬 교사는, 그 감동을 아이에게 전하고 싶어진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감각에 아이의 주의를 돌리게 함으로써 아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자연 광경의 생명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그 광경을 보기 위해서는, 그것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는 여러 가지 대상을 확인하지만, 그것을 결부시키고 있는 관계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 그들이 서로 어울려 연주하는 감미로운 하모니를 들을 수가 없다. 아이가 아직 획득하지 못한 경험 없이는, 모든 감각에서 동시에 생겨나는 그런 복합적인 인상을 감지할 수 없다. 풀 한 포기 없는 황야에서 오랫동안 방황해 본 일이 없는데, 불붙는 듯한 사막의 모래에 발을 데어 본 일이 없는데, 뜨거운 햇살이 내리꽂히는 바위산의 숨막힐 듯한 열기에 괴로워해 본 일이 없는데, 어떻게 아름다운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맛볼 수 있겠는가. 향기로운 꽃이 넋을 빼앗는 초록빛 들판이, 촉촉한 아침 이슬이, 여린 풀을 밟을 때의 그 포근한 기분이 어떻게 감관(感官)을 매혹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적당한 때에 그에게 실물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좋다. 그의 호기심이 충분히 그 쪽으로 향해진 것을 알면, 무엇인가 간단한 질문을 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그를 인도해 가는 것이 좋다. 지금의 경우에는, 떠오르는 태양을 그와 함께 충분히 바라본다. 그리고 그 방위의 산들이나 가까이 있는 다른 것들에 주의를 돌리게 하여, 그것들에 관해 무슨 말이든 마음대로 하게 하라. 그런 다음, 잠시 꿈이라도 꾸는 사람처럼 침묵하다가 그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어제 저녁에 태양이 저기에 가라앉는 것, 그리고 아침에 저기에서 떠오른 것을 생각하고 있단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루소의 ‘에밀’ 중에서)
(나) 전통적 방식의 교육은 본질적으로 위로부터, 혹은 밖으로부터 무엇을 부과(賦課)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이제 겨우 조금씩 성숙해 가면서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인의 기준과 내용과 방법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 사이의 간격은 매우 크기 때문에 배우고 행동하도록 요구되는 내용과 방법은 어린이들로서는 감당하기에 생소한 것이다. 그것들은 어린 학습자가 이미 지니고 있는 경험으로써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억지로 부과할 수밖에 없다. 비록 훌륭한 교사는 이러한 거친 모양을 덜 보이기 위하여 기술적인 방법을 써서 억지로 부과하는 것이 안되게 하려고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별로 다를 바는 없다. 아동의 의무는 오직 명령하는 대로 행하고 배울 뿐이다. 배운다는 것은 단지 이미 책이나 어른의 머리 속에 있는 바를 습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가르쳐지는 내용은 본질적으로 정태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것은 완결된 결과물로서 가르쳐지고, 애초에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다든가 혹은 미래에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든가에는 거의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든 참된 교육은 경험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험이 다 같이 교육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경험과 교육은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경험이든지 다음에 오는 경험의 성장을 저지하거나 삐뚤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경험은 비교육적인 것이다. 어떤 경험은 무감각을 일으킬 수 있으며, 감수성과 감응성을 결하게 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장래에 더 풍부한 경험을 가질 가능성을 제한해 버린다. 어떤 경험은 당장은 즐길 만한 것이지만, 방만하고 경박한 태도의 형성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후속되는 경험의 성질을 왜곡시켜 그 경험이 해야 할 기능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또한 어떤 경험들은 서로 관련성이 없어서, 각각은 그 자체로서 즐길 만하고 감동적이기까지도 하지만 집합되어 있다는 상태 그것으로서는 서로 연결이 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 활동력은 낭비되고 사람은 산만해져 버린다.
경험의 필요를 고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한 경험을 동반하는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모든 것은 경험의 질에 달려 있다. 교육자의 임무는, 학생을 위하여 싫증을 일으키지 않고 그의 행동에 열중할 수 있는 동시에, 즉각적인 쾌감을 초월하여 장래의 유리한 경험을 촉진시키는 그러한 종류의 경험을 학생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학생의 활동이 바람직한 미래의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촉진시키는 것이어야 하므로, 교사의 역할은 한편 학생으로 하여금 싫증내지 않고 오히려 활동에 열중하게 하고 그러면서도 즉각적인 즐거움 이상의 것이 되도록 하는 그러한 종류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마치 사람은 누구나 자기 혼자서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어떤 경험도 따로 따로 고립되어 존재할 수는 없다. 모든 경험은 다음의 후속되는 경험들 속에 계속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 중심 교육의 중심 문제는 미래의 의미 있고 창조적인 경험의 전형을 현재의 경험들 중에서 선택하는 일이다. (듀이의 ‘경험과 교육’ 중에서)
▼〈자연대 간호대 약대〉▼
※800자 내외로 쓸것. 아래 제시문은 과학적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인 ‘가설의 설정’과 실험을 통한 ‘가설의 검증’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1) 이 글에 나타난 과학적 가설과 그 검증을 위한 실험적 방법을 분석정리하고,제시된실험을 토대로 가설 검증 과정의 타당성을 논하라.
(2) 만일 이 실험의 결과에서 가설이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판단된다면, 여기에 제시된 실험방법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라. 반대로 여기에 제시된 실험 방법이 가설을 검증하기에 불충분하다면, 그 점을 지적하고 이 실험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시하라.
〈제시문〉
사람들은 개미가 냄새를 맡아 길을 찾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더듬이로 냄새를 맡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개미의 더듬이에 냄새 맡는 기능이 있다는 생각에 쉽사리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개미가 개미산과 같은 것을 길에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그 냄새를 맡고 길을 찾는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믿기에는 너무 근거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나는 실험을 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시간에 쫓기는 내가 병정개미의 행군을 지켜보기 위해 며칠씩이나 시간을 낼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손녀 루시에게 나의 계획을 말해주고 그 일을 부탁했습니다. 루시는 흥미를 느꼈는지 기꺼이 나를 돕겠다고 했습니다. 나의 조수가 된 루시는 며칠 동안 정원을 돌아다니며 병정개미의 행진을 지켜 보았습니다.
어느 날,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루시가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할아버지, 지금 병정개미가 곰개미의 집을 습격하고 있어요. 빨리 나오세요!”
나는 정원으로 달려나가 루시에게 물었습니다.
“병정개미가 지나간 길을 기억할 수 있겠니?”
“예, 잘 알고 있어요. 표시를 해두었으니까요.”
“그래? 참 잘했구나. 그런데 어떻게 표시를 했을까?”
“병정개미가 지나간 길에 돌을 얹어 놓았어요.”
영리한 나의 조수는 병정개미가 제 집에서 나오자마자 미리 준비한 흰 돌을 가지고 뒤를 따르며 표시해 두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병정개미들은 전투를 끝내고 루시가 표시해 놓은 흰 돌을 따라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개미집까지의 거리는 1백 미터 가량 되었습니다. 그 정도면 내가 마음먹고 있던 실험을 해 볼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나는 루시에게 비를 가져오게 해서 개미가 지나간 길을 쓸어내고 그 위에 새 흙을 깔아놓았습니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개미가 냄새를 맡아 길을 찾는다면, 이제 병정개미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것입니다.
나는 1백 미터나 되는 길을 모두 쓸어내지는 않았습니다. 4미터 간격으로 군데군데 길을 끊어 놓았습니다. 제각기 애벌레를 물고 집으로 돌아가던 병정개미들은 내가 끊어 놓은 첫 토막길에 도착했습니다. 선두에 섰던 개미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뒷걸음질을 쳤다가 옆으로 나가 보기도 하고 다시 제길로 와서는 쩔쩔맸습니다. 선두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사이에 뒤에 따라오던 개미들이 밀어닥쳐 길이 끊긴 일대는 대혼잡을 이루었습니다.
한참 동안 우왕좌왕하던 선두개미는 용감하게 내가 새로 깔아놓은 흙 위로 올라갔습니다. 행렬은 다시 질서 있게 한 줄로 연결되었습니다. 병정개미들은 토막길이 나올 때마다 이와 똑같은 혼잡을 이루었지만, 결국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고 루시가 표시해 놓은 흰 돌을 따라 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앙리 파브르, ‘파브르 곤충기’에서 발췌)
▼〈자연대 공대〉▼
1. 서울대학교 천문학과의 초신성(超新星, supernova) 탐사 팀은 1999년 6월18일 탐사의 첫 개가로서 아벨 은하단 2065 안에 있는 한 은하에서 초신성을 발견하고, 8월14일 국제천문연맹으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았다. 초신성 탐사 팀은 1998년 10월과 1999년 1월과 6월에 한국천문연구원의 보현산 천문대 1.8미터 광학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여러 은하단들을 세 파장대에서 CCD(charge coupleddevice;미약한 빛을 검출하는 첨단 장비) 촬영을 하였다. 이 자료들을 분석한 후 1월17일과 6월18일의 이미지를 비교한 결과 새로운 초신성이 R.A.〓15h22m28s.90, Dec〓+27°42'57″.95(equinox 2000.0)에서 발견된 것이다.
한국에서 초신성을 발견한 것은 선조 37년(1604)에 관상감의 천문학자들이 발견한(서양에서는 케플러 초신성으로 알려져 있음) 이래로 거의 400년만의 일이다. 따라서 한국 역사상 첫 공식 발견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이번에 발견된 이 초신성까지의 거리, 즉 초신성을 포함한 은하단 2065까지의 거리는 약 10억 광년(적색이동에 관한 근사적 거리)이고, 발견 당시 초신성의 밝기는 약 R〓18.79 등급이었다.
이 초신성의 발견은 7월7일 이명균/박창범 교수 팀에 의해 국제천문연맹에 처음으로 보고되었으며, 8월 초 한국천문연구원의 보현산 천문대 소속 전영범 연구원 팀과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의 Michael Bolte 교수의 추가 관측에 의해 재확인되어 8월14일자 국제천문연맹 회람 7237호에서 “SN 1999dm”이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받았으며, 공식 발견 일자는 1999년 6월 18.64일(UT 기준)로 인정되었다.
위의 글은 최근 한국인 팀에 의해 이루어진 초신성 발견에 관한 기사이다. 초신성 폭발은 무거운 별이 핵연료를 다 써버리고 마지막으로 대폭발을 하면서 엄청난 빛을 내는 별의 진화의 거의 마지막 단계이다. 이 때 하나의 별이 은하계 전체가 내는 정도의 빛을 내기 때문에 몇 주 동안 대낮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초신성 발견이 공인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본문의 내용으로부터 이번에 발견된 초신성이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데 근거가 되었으리라 생각되는 세 가지의 기준을 찾아내고, 왜 그러한 기준이 중요할지 간단히 설명하라.
2.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에는 대충 천억 개의 은하계가 있고, 각각의 은하계에는 평균 약 천억 개의 별이 있다.
한편 미시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 주위의 물질 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졌고, 생명 현상은 원자와 원자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분자를 단위로 하여 일어난다. 그런데 원자, 분자는 아주 작기 때문에 꽃잎에 맺힌 아침 이슬 한방울에도 많은 수의 원자와 분자가 들어있다. 이슬 한방울(부피는 0.1mL로 가정)에 들어 있는 원자의 수와 우주 전체의 별의 수를 비교하고 이 결과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서술하라. 물 1 몰은 18 그램이고, 이안에는 6.0×1023개의 물분자가 들어있다.
3. 태양 에너지는 생명 에너지의 근원이다. 한낮에 1㎠에 1분 당 8J 정도의 태양 에너지가 도달하는 지구 표면에서 이 에너지가 모두 기화열로만 사용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지면에 고인 물 1㎜의 층이 기화되는 데 몇 분쯤 걸릴까? 유효 숫자 하나로 답하라. 물의 기화열은 1 몰 당 약 41kJ이다.
물이 물분자의 층을 이루고 있다고 가정하고, 위의 경우에 양지에서 물이 증발할 때 매초 몇 개의 물분자 층이 액체에서 기체로 바뀌는 셈인지 유효 숫자 하나로 답하라. 물분자 층의 두께를 어떻게 추산할 수 있는지 보여라.
4. 하나의 세포에 들어 있는 사람의 DNA에는 30억 개의 염기 쌍이 들어 있고, 염기 쌍 사이의 거리는 3.4 옹스트롬(1Å 〓10-10m)이다. 하나의 세포에 들어 있는 사람의 DNA를 한 줄로 연결하면 전체 길이는 얼마정도가 될까? DNA를 지름이 약 20 옹스트롬인 긴 원통으로 가정하자. 하나의 세포에 들어 있는 사람의 DNA로 DNA의 구를 만들었다면 이 DNA 구의 지름은 얼마일까? 유효 숫자 하나로 답하라. 참고로 사람 간세포의 지름은 약 20μm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세포핵의 지름은 약 4μm이다.
▼〈농대〉▼
※ 민주 사회에서는 다수결 원칙이 의사 결정의 기본 규칙이다. 한편 다수의 결정에 반대하는 소수자가 보일 수 있는 반응 중의 하나가 불복종(不服從)이다. 다음 제시문에서 주장되고 있는 불복종이 수락될 수 있는 조건을 정리하고, 사회에서 소수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를 논술하라.
〈제시문〉
“일반적 상황하에서는 다수결 원칙이 민주적 헌법을 운용하는 데에 가장 효율적인 절차 규칙이지만, 이는 부차적인 지위를 갖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다수결 원칙은 본질적으로 정의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정이 허락한다면 부정의(不正義)한 입법에 대항하기 위하여 정의(正義)의 원칙에 호소할 수 있다. 우리는 대체로 다수가 제정한 것을 준수하여야 할 책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다수가 제정한 것 자체를 정의롭다고 간주하여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 시민 사회와 공공선(公共善)의 관념을 규정하는 도덕적 원리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행동이라는 의미에서 시민 불복종은 정치적 행동이다.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추구와는 다른 정치적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생존력 있는 민주 체제에서는 공통된 정의의 관념이 존재하며, 시민들은 이를 근거로 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활동을 규율하고 헌법을 해석한다. 시민 불복종이란 다수의 정의감에 호소하는 공적(公的)인 행위이다. 항의자들은 자신의 불복종 행위가 이러한 정의의 관념에 의하여 정당화된다고 믿으며 항의의 대상이 된 조치의 재고를 촉구하는 한편, 자신들의 견해에 의하면 사회적 협동의 조건들이 존중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려는 것이다.”(존 롤스)
▼〈간호대〉▼
〈문제〉 다음 제시문을 읽고 거기에 나타나 있는 사실을 주된 논거로 하여 글 속의 ‘나’가 취한 삶의 자세에 대해서 논술하라.
〈제시문〉
30회 생일을 맞이하여, 나는 문명의 빛이 들지 않는 오지(奧地)로 가서 그곳 주민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할 결심을 했다. 나는 이 계획을 친한 친구 한 사람 이외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파리에서 보낸 편지로 내 계획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러자 나는 친지들과 맹렬한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먼저 그들은 이 계획 자체에 대한 비난보다도 내가 자기들과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자기들을 신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나를 비난했다. 이러한 지엽적인 문제를 갖고 그들은 나를 매우 괴롭혔다. 그들은 모두 ‘갈라디아’서(書)에 있는 사도(司徒) 바울의 말씀, 즉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려 할 때 먼저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였다”는 그 말씀에 대해 아름다운, 아니 지나치게 아름다운 설교를 해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합세해서 내 계획이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내가 주어진 재능을 묻어 두고 다른 그릇된 재능을 활용해 보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원시인들 가운데에서의 활동은 학문이나 예술 분야의 재능이나 지식을 포기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자식처럼 사랑하여 준 위도르까지도 나더러 총을 가지고 방어선(防禦線)―그 당시에는 아직 참호(塹壕)라는 말이 없었다―에 나서려는 장군과 같은 사나이라고 하면서 책망했다. 어떤 부인은 내가 원주민들이 의료 도움을 매우 필요로 한다는 사정을 강연으로 널리 알리는 것이 내가 계획하고 있는 활동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나에게 충고했다. “태초에 일이 있었다”는 괴테의 파우스트의 말은 현대에 통용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선전이 사건의 어머니라는 말이다.
신약성서에는 예수가 가르친 사랑에 봉사하기 위해서 새로운 삶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선택을 칭송하며 그런 사실을 훌륭한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에 봉사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수한 환경 속에서도 고난을 참고 행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만은 나의 계획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의 계획은 예수의 말씀을 따르고 실행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그 점을 호소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오히려 내 생각을 망상이라고 비난했고 나는 그 비난을 참아내야 했다. 당시 나는 기독교인들과 그러한 토론을 지칠 정도로 거듭했다.
내가 어떠한 경로로 ‘나의 계획’을 결심하게 되었는가. 이 문제를 그들에게 이해시키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 뒤에 무엇인가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내가 나중에 출세가 늦은 것을 깨닫고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붙잡고 말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젊어서 이미 남들이 일생 동안 싸우고 노력해야 차지할 수 있는 명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만류는 내게 별로 의미가 없었다. 한편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된 이면에는 슬픔으로 끝난 사랑이 스며들어 있다고 추측해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나를 머리에 약간 이상이 있는 조숙한 사람으로 여기고, 조소(嘲笑)로써 맞아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게는 오히려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내 계획에 불합리한 데가 있다면,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이상주의는 냉철해야 된다. 미개척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다. 그리고 그 모험은 특수한 경우에만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이며 그런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 경우에 그 모험은 정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건강, 안정된 신경, 정력, 상식, 지구력, 분별력, 무욕(無慾), 그리고 이상의 길을 가는 데 필요한 다른 여러 가지 요소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설령 내 계획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견뎌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었다.
▼〈공대 약대 생활과학대 자연계〉▼
※900자 이내로 쓸 것. 생물체의 항상성 유지에 관한 제시문을 참조하여 아래 질문에 답하라.
1. 온혈동물의 경우 체온을 일정한 범위 내로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를 생체 내 대사과정을 조절하는 효소작용과 연관시켜 설명하라.
2. 온혈동물의 경우 일반적으로 큰 동물에 비하여 작은 동물의 대사과정이 더 활발하다(단위 체중당 발생하는 열량이 많다). 그 이유를 설명하라.
3. 온혈동물의 장점과 단점을 생태학적인 면에서 논하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진화된 생물학적 형질의 예를 들어 보라.
〈제시문〉
생물체는 생체 내의 여러 환경을 생존에 유리한 조건으로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경향(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주변의 환경 변화에 저항하여 생체 내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려는 항상성은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하는 주요 특성 중의 하나이다. 항상성의 유지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생물체는 대사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항상성 유지에 사용하고 있다. 에너지 소모에도 불구하고 생물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은 항상성이 그 생물체에 이익을 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예 중의 하나가 온혈동물에서 체온을 일정한 범위 내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성 유지는 생물체에 제약적인 요소로도 작용하여 그 생물체의 물리적인 형태와 생태학적 적응능력에 제한을 주기도 한다.
▼〈생활과학대 자연계〉▼
※제시문을 읽고 아래 지시에 따라 논술하라.
가) 제시문 (1)의 논지에 근거할 때 제시문 (2)의 ‘나’의 모습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를 서술하고,
나) 그러한 설명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논술하라.
〈제시문1〉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자율적 활동이 보장되지 못한 억압적인 정치상황 하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우 적다. 그런 환경 속에서 개인은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에 따라 행동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소신이라든지 창의성이라는 것은 오히려 불편함이나 손해를 가져올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당히 관행에 따라 처신하는 행동이 몸에 배게 된다. 설사 자율적인 판단과 행동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그 범위는 매우 좁은 개인적 일상사 또는 소시민적 활동에 국한되게 마련이다. 나약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개개인의 윤리의식의 부족함에 있다기 보다 그들을 타율적인 존재로 만드는 비민주적 환경에 있는 것이다.
〈제시문2〉
인문계 공통 제시문 ⑶과 동일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 놓여 있다.
…(중략)…
▼〈농대〉▼
※세계는 식량문제로부터 자유로웠던 시기가 거의 없었다. 아일랜드에서는 1846년과 1847년에 큰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고, 인도와 중국에서도 1869∼79년에 2000여만명이 굶어 죽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지금도 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일부에서 8억에 이르는 사람이 굶주리고 있다. 한편 앞으로 식량의 부족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식량이 무기로 사용될 것이라는 가능성도 예견되고 있어 21세기에는 식량확보가 중대한 과제가 된다. 〈제시문1〉과 〈제시문2〉가 나타내고 있는 각각의 의미와 그 한계를 고려하여 식량문제 해결 방안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
〈제시문1〉
한줌 흙도 움켜쥐고
놓치지 말아라
이 목숨이 끊어지도록
북돋우며 나가세!
(심훈의 ‘상록수’ 중에서)
〈제시문2〉
최근의 생명공학은 유용한 유전자를 탐색하여 동식물 및 미생물에 새로운 형질을 발현하게 하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 분야의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병이나 제초제에 강한 유전자 재조합 식물이 개발되었으며, 동식물의 체세포 배양을 통한 복제 생산 기술도 실용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한편 이러한 유전자 재조합 생물체들은 새로운 개체의 특이성뿐만 아니라 환경과 인간에게 미치는 예상치 못한 역기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