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 모두 가짜임을 알고 거래하는 ‘가짜 마켓’이 날로 번성하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에 최근 문을 연 청소년 대상 대형 쇼핑센터에는 요즘 마치 시골의 5일장처럼 일요일마다 ‘가짜 마켓’이 형성돼 국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을 흉내낸 가방 핸드백 신발 옷 등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주고객은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젊은층. 일요일에는 ‘진짜같은’ 가짜 제품이 더 많이 쏟아져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청소년들이 즐겨 매장을 찾는다.
▼ 실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6가 한 대형 쇼핑센터의 지하2층과 지상4층 잡화매장. 가짜 핸드백과 가방 등을 파는 매점이 직수입 제품을 파는 매점보다 훨씬 많았다. 가는 곳마다 구치 샤넬 프라다 베르사체 버버리 등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과 상표를 모방한 제품이 그득했다. 상인들은 공공연히 “진짜와 다름없는 가짜를 판다”며 호객했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대형 쇼핑센터의 5,6층 잡화매장도 가짜를 구입하려는 젊은이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5층 잡화매장에서 만난 이모씨(22·여·서울 마포구 도화동)는 “요즘 친구들 사이에선 ‘누가 더 진짜 같은 가짜’를 구입했는지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모씨(20)도 “굳이 비싼 진짜를 사느니 ‘국산 가짜’를 사면 고급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욕구도 채우고 실속도 챙기니 일석이조”라고 주장했다.
한 상점주인은 “상인들이 당국의 단속이 느슨해지는 일요일에 ‘고급 가짜’를 많이 내놓다 보니 자연스레 일요일마다 ‘가짜 시장’이 형성된다”며 “정품으로 사려면 60만∼100만원은 줘야 하는 물건과 거의 똑같은 가짜를 A급은 10만∼15만원, B C급은 2만∼7만원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 진단
요즘 젊은층에 번지고 있는 ‘가짜 열풍’은 소비자가 먼저 가짜를 찾고 스스로 ‘실속을 차린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속고 속였던 예전의 가짜 거래와 차이가 있다. 거래도 예전처럼 어두침침한 뒷골목 시장이 아니라 대형 매장에서 이뤄진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최현자(崔賢子)교수는 “브랜드에 집착하는 허영심과 실용주의가 교묘히 혼합돼 가짜 마켓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 YMCA 시민중계실 서영경(徐瑩鏡)팀장은 “진짜 같은 가짜를 싸게 사놓고 실속차린 것처럼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생각은 위험천만”이라며 “가짜 마켓의 번성은 국내 업체의 창조적인 제품개발 의욕을 꺾어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