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 1100년 은행나무 죽어서 남긴 뜻은…

  • 입력 1999년 10월 12일 19시 32분


경기 양평군 지제면 수곡리 주민들은 마을 한가운데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마을의 상징물인 은행나무가 자신들의 잘못으로 고사(枯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수령이 11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은행나무가 고초를 겪기 시작한 것은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4년. 주민들은 나무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에 마을회관을 세우고 나무 주변에 도로를 포장하면서 길게 뻗은 나무의 뿌리를 두꺼운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또 나무 주변 곳곳에 우물도 팠다.

당시 주민들은 은행나무가 고사할 것이라는 염려보다는 마을 개발과 생활의 편의에 대한 고려가 우선이었다.

이 결과 더이상 뿌리를 뻗지 못하고 주변 우물에 수분까지 빼앗긴 은행나무는 80년대 중반 들어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해 96년 나무 본체와 가지가 완전히 썩어버렸다.

주민들은 89년 서울의 한 사설 임업연구소에 도움을 요청,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해 1년여간 공을 들였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이 마을 최동민(崔東珉·44)전이장은 “97년 나무를 아예 뽑아버릴 생각도 했으나 그보다는 죽은 나무를 그대로 두고 이를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소재로 삼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나무 앞에 ‘우리가 무지해 이 나무를 죽였다…’는 등 자성의 내용을 담은 표석을 세우거나 이 고사목을 환경보호에 눈을 부릅뜬 장승으로 조각해 남기는 방안 등이 그것.

최씨는 ‘때늦은 깨달음’이나마 환경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확고해진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양평〓이현두기자〉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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