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원철/조계종사태 안타까움

  • 입력 1999년 10월 14일 18시 26분


또 조계종 사태다. 이젠 지켜보기도 지겹고 언급하기도 싫다. CNN BBC 등을 통해 폭력 충돌 현장이 전세계로 방영되는 것을 보며 창피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외국 기자들의 전화를 받고 뭐라 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느 통신사의 특파원도 “온 세계의 보도기관에서 이 일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자꾸만 물어보는데 참으로 창피하고 난감하다”고 하소연을 한다.

홍콩의 무협영화 장면 같은 것을 현실로 보니 흥미롭다는 그들의 호기심 앞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단다. 1600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현존 유형 문화재의 대부분을 생산해냈을 만큼 한국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지금도 인구의 4분의 1을 신자로 하고 있는 한국불교의 최대 종단이 이젠 그렇게 우리 사회에 부담이 되고 있으니 안타깝다.

조계종이 모처럼 안정을 찾았는가 싶던 참인데, 이게 웬 풍파인가 싶어 우선 재판부가 원망스럽다. 소송이 들어왔으니 어떻게든 판결을 내려야 했고 실정법에 따라 어련히 정확하게 판단했겠지마는, 법조문만 가지고 기계적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좀더 넓고 깊은 안목을 동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다 못해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의 해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보더라도, ‘그를 해임시킨 것은 부적절했다’고 하면서도 ‘검찰 조직의 사정상 그의 복직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복직은 허용치 않는다는 판결이 있었다. 더욱이 그 사정이라는 것으로 선후배의 위계질서라는, 검찰 조직에 관한 법에 정해 있을 리 없는 이유를 들었다. 여러 가지 사항을 골고루 감안하여 그렇게 묘한 판결을 내린 법관도 있는데, 이번 일에 대해서는 종교법과 세속법의 관계에 대한 고민 없이 어째서 그렇게 단순한 판결을 내려 이런 사태를 촉발시켰는지 내내 아쉽다.

해외 보도기관들이 한결같이 궁금해하는 것이, 양측이 종교적인 신행(信行)에서 서로 다르기에 그렇게 격렬하게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고 해서, 그런 것은 전혀 없고 그저 종권 다툼이라고 대답하며 낯이 뜨거워졌다.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많은 이들이 민망해 하는데, 그런 광경을 연출한 당사자들은 과연 어떤지? 어느 쪽 편을 들면 그 판사가 당한 것처럼 또 협박전화니 뭐니 난리가 나겠고, 양측 모두에게 공평하게 한 마디씩 해야 하겠다.

이른바 정화개혁회의측에 하고 싶은 말은, 종단의 일을 세속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종단의 체면을 스스로 구기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네들도 종단을 위해 옳은 일이라는 신념에서 그런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만으로도 이미 불교를 살리는 길이 아니라 죽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왕 세속법에 의지하려고 했다면 끝까지 그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고산 총무원장의 사임으로 새로운 국면이 벌어졌는데, 그 국면에서 다시 법적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가야지 물리력으로 밀고 들어가려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현 총무원 집행부를 지원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제발 적극적인 폭력 행사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총무원 건물을 사수하는 것이 종단을 위해 아무리 요긴한 일이라 판단될지라도, 또 아무리 불가피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수단으로 폭력을 동원하는 것은 이 역시 종단을 죽이는 짓이 된다.

특히 판사가 협박전화에 시달린다고 하는데, 울분과 충정은 이해하지만 그것은 자칭 불자로서 부처님과 불교 얼굴에 똥칠을 하는 해종 행위이다. 종단을 살린다는 구호 아래 해종 행위를 자행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자중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광경을 연출할 때에는 어느 쪽이든 나름의 명분과 변명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아무리 타당한 명분과 변명이라도 그 활극의 장면 앞에서는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종교적 신행에 심각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출세간(出世間)의 수도(修道)에 귀한 한 생을 바치겠다는 이들인데, 도대체 왜 자체 내에서 대화로 풀지 못하느냐 말이다.

윤원철(서울대교수·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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