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권 출범 후 지금까지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중 자신이 수사 및 정보기관으로부터 불법 도청 감청을 당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이들 중 상당수가 일상활동에서 도청 감청과 우편검열에 대비한 ‘통신보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나라당 수도권 출신 J의원은 비서관 명의의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한나라당 부산시지부는 시지부에 후원금을 낸 사람들에게 보내는 후원회비 영수증을 우편이 아닌 인편으로 보낸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검열을 피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
청와대나 국민회의 등 여권 인사들의 경우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도청 감청을 우려해 휴대전화를 몇개씩 가지고 다니거나 전화통화보다는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몇년 전부터 일반전화를 하면 “도청이 힘든 휴대전화로 해달라”고 주문하는 실정이다. 또 정보기관 고위간부 출신인 한 인사도 도청 감청을 우려해 서울 시내 호텔에는 가급적 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가더라도 중요한 얘기는 한적한 호텔 2층 로비 등에서 한다. 음식점에서도 도청 감청이 우려된다고 판단되면 소음이 섞이도록 방문을 열어놓는 경우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정부의 특수기관에서 사용하는 전화기에 ‘이 전화는 보안성이 없다’고 써있는 것도 역설적으로 도청 감청이 있다는 말이 아니냐”며 “정치인들의 도청 감청 불안감이 이 정도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윤승모·정연욱기자〉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