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무자녀 또는 한 자녀 가정의 증가로 잠재적인 입양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대책과 국민 의식 변화가 뒷받침되면 우리 스스로 입양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입양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안타까운 것은 국내입양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 대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겉돌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의지 없이 국민 의식과 사회 분위기를 핑계로 수수방관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다. 국내입양의 현실과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모색해봤다.》
◇직접 낳은 것처럼 꾸며 親子입적◇
▼국내입양의 현실▼
지난달 30대 불임부부가 A입양원에 입양을 신청했다. A입양원이 며칠 뒤 ‘조건이 맞는 아이가 있다’고 연락하자 ‘입양을 한 달 미뤄야겠다’는 대답이 왔다. 이웃에 알린 ‘출산예정일’이 한달 뒤라는 것.
국내입양의 99%는 엄밀한 의미의 입양이 아니라는 게 입양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혈액형이 맞는 신생아를 데려다 직접 낳은 것처럼 친자(親子)로 올리기 때문. 입양사실을 숨기기 위해 입양기관과 연락을 끊고 아예 이사하는 경우까지 있다.
경기도 남부 아동일시보호소 심양금소장은 “우리 현실에서는 누구도 비밀입양을 손가락질할 수 없다. 입양아라는 사실이 결혼이나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한 비밀입양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다.
심지어 입양기관도 못믿어 산부인과 조산소 등에서 미혼모의 아이를 불법적으로 넘겨받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대 배태순(裵台順·아동복지학)교수는 “80년대 연평균 3000명 안팎이던 국내입양 건수가 90년대에는 1200명선으로 줄었다. 그만큼 불법적인 개인입양이 많아졌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불법적인 개인입양은 친부모의 친권포기 등 법적절차가 불완전하고 양부모의 이혼 등으로 ‘파양(罷養·입양 취소)’될 경우 아이가 방치되는 등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대한사회복지회 김명우(金明禹)회장은 “입양기관을 통해 입양하더라도 비밀은 철저히 보장된다”며 “법적 절차를 분명히 하고 충분한 상담과 교육을 받는 것이 아이와 양부모 모두에게 좋다”고 말했다.
국내입양 신청자들은 친자입적을 위해 건강한 신생아를 주로 찾는다. 장애아는 철저히 외면된다. 지난해 국내입양아 1426명중 장애아는 단 6명(0.4%)에 불과했다. 해외입양아 2249명중 장애아는 37.6%인 846명.
한 입양기관 실무자는 “건강하고 예쁜 아이는 국내용, 장애아는 무조건 국외용으로 분류한다”고 털어놓았다.
◇양육비 지원 ‘특례법’유명무실◇
▼비현실적인 정부지원▼
정부는 94년 국내입양을 촉진하기 위해 입양가정에 500만∼1000만원의 주택자금과 입양아의 교육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지원금을 신청한 입양가정은 하나도 없다.
임신을 가장하고 이사까지 하는 현실에서 몇백만원 때문에 입양의 비밀을 드러낼 양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장애아 입양가정에 대한 양육비 지원을 명문화한 입양촉진특례법도 유명무실한 실정. 보건복지부가 노승우(盧承禹·자민련)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97,98년에 각각 4600만원(50가구분)의 지원예산을 책정했으나 20%도 집행되지 않았다.
한 입양전문가는 “정상아동의 국내입양도 잘 안되는 현실에서 ‘돈 줄테니 장애아를 입양하라’는 터무니없는 주문을 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입양기관에 대한 정부 지원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 정부는 96년부터 홀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등 입양기관에 매년 1000만원 가량을 지원하고 있다. 전체 운영비의 1%도 안되는 수준.
“국내입양 수수료는 200만원인데 비해 해외입양은 700만∼1000만원이다. 운영난에 허덕이는 민간 입양기관 입장에서는 해외입양쪽에 더 큰 유혹을 느끼게 된다.”(서울시립아동상담소 이규동상담실장)
◇정책 주먹구구식 미봉책 일관◇
▼오락가락 입양정책▼
정부의 입양정책은 주먹구구식 미봉책으로 일관해왔다.
76년 북한이 해외입양 현실에 대해 악선전을 퍼붓자 정부는 곧바로 국내입양 및 가정위탁 5개년 계획을 세웠다. 82년부터는 국외입양을 중단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81년 출범한 새 정부는 “민간외교 차원에서 국외입양을 개방하겠다”고 번복했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언론이 ‘한국은 고아수출국’이라고 비난하자 정부는 또다시 “96년부터 장애아와 혼혈아 외에는 해외입양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방침도 94년 백지화됐다. 정부는 대신 “앞으로 매년 국외입양을 3∼5% 줄여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IMF사태라는 복병을 만나자 이마저 유보했다.
국내입양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입양을 갑자기 중단시키자니 해마다 발생하는 1만명 안팎의 부모없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보건복지부 아동보건복지과 길호섭과장은 “‘해외입양 전면금지’는 정책의지의 표명으로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 의식변화없이 정부의 힘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가정위탁제도 활성화등 필요◇
▼개선방안▼
노승우의원은 “입양수수료를 정부가 부담하는 등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양이 안된 아동을 18세까지 시설에서 양육하려면 수수료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드는데다 아이를 위해서도 가정을 갖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노의원의 주장.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변용찬박사는 “호적에 올리지 않고 부모없는 아이를 돌봐주는 가정위탁제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당장은 입양 의사나 능력이 없는 가정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아이를 위탁받아 키우다가 정식 입양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홀트아동복지회 이현주(李賢珠)과장은 “정부가 입양에 대한 편견을 떨쳐내는 공익광고 등을 대대적으로 벌여 잠재적 양부모에게 입양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일깨워주면 국내입양 붐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5월 국내입양 가두캠페인을 벌였던 동방사회복지회 관계자도 “TV에 불과 몇분간 안내방송이 나갔는데 하루동안 70여명이나 입양을 신청했다”며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윤종구기자(jkmas@donga.com)
이철용기자(lcy@donga.com)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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