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관계자는 29일 김수환(金壽煥)추기경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과 관련, 이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모두 97명의 명예박사가 서울대에서 탄생했지만 서울대가 자체 심사를 거쳐 수여자를 선정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 대학원장을 위원장으로 한 명예박사 추천위원회가 학내에 구성된 것도 따라서 이번이 처음.
인류복지와 학문업적이 수여 기준이지만 그동안 서울대의 명예박사 학위는 대부분 정부의 정치적 고려와 외교적 판단에 따라 수여됐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같은 성격이 쉽게 드러난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강했던 60년대 초까지 서울대 명예박사는 대부분 미국인이었다.
서울대의 첫 명예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더글러스 맥아더장군. 그는 48년 8월10일 서울대에서 명예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두번째 역시 주한 미군사령관 존 하지장군으로 49년 8월10일 명예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같은 미국의 정관군(政官軍)계 인사들의 명예박사 행렬은 6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주한 미8군사령관과 주한 미국대사는 ‘단골 손님’이었고 국무장관 상원의원 등 60년 이승만(李承晩)정권이 4·19혁명으로 무너지기까지 명예박사 22명 가운데 15명이 미국인이었다.
70,80년대에 우리나라의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거론되자 제삼세계 국가원수를 초청해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는 제삼세계 국가들이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일 때였다.
엘살바도르 가봉 코스타리카 자이르 라이베리아 에티오피아 등 초청방한한 제삼세계 국가원수들에게 명예박사가 주어졌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자이르의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이나 라이베리아의 새뮤얼 도 대통령,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등은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뒤 몇년 안돼 내전으로 퇴임하거나 심지어 암살되기까지 했다.
한국인은 49년 이승만대통령(명예 법학박사)이 첫번째다. 이어 61년 국어학자 이희승(李熙昇)교수와 농학자 조백현교수, 64년 화학자 이태규교수 등 4명이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35년간 아무도 받지 못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그동안 명예 박사학위 수여를 정부의 의도대로 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의 판단에 맞춰 학위를 수여하겠다”며 “따라서 김추기경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는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