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 파문]중앙일보 대선때는 '이회창문건'

  • 입력 1999년 10월 27일 20시 10분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폭로한 ‘언론대책문건’ 작성자가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로 드러나자 정치권에서는 97년 대통령선거 때를 돌이켜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당시 국민신당 김충근(金忠根)대변인은 97년 11월29일 “중앙일보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대통령후보에게 전달한 문건”이라며 ‘이회창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은 “이후보의 ‘법대로’ 이미지는 절대권력과 부닥칠 때 좋은 인상을 주지만 대통령으로서는 딱딱하고 낡은 인상을 준다” “김윤환(金潤煥) 의존에서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이한동(李漢東) 등 민정계 주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등 이후보에 대한 정치적 조언을 담고 있었다. 문건 작성일은 7월24일로 이후보가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였으며 문건 작성자로는 당시 이후보 진영 취재를 담당했던 모기자가 지목됐다.

이에 중앙일보측은 “내부문서임에는 틀림없으나 이후보에게 조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후보 진영이 자체 분석한 것을 데스크들이 알아 두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국회 취재반장이 취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문건을 국민신당에 제보한 중앙일보 내부인사는 ‘중앙일보 편집국〓이회창후보 선거참모부’라는 별도의 문건을 통해 “이 문건이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 고흥길(高興吉)특보를 통해 이후보에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이후 자체 조사를 통해 모기자를 제보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번 ‘언론대책문건’도 내용과 대상은 다르지만 중앙일보 기자가 작성, 여야 공방의 소재가 됐다는 점에서 ‘97년 문건’과 유사하다. ‘언론대책문건’도 현 정권의 위기와 주요 신문들의 태도변화를 다룬 뒤 언론개혁 조치들을 통해 일부 신문을 친여(親與)성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제안을 담고 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현직 기자가 만든 정치문건이 정치공방의 소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언론의 도덕성에 커다란 흠집을 남겼다”면서 “기자들의 자세를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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