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 사이는 그 이상일 것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문기자는 이 사건 발생 이후 문제의 언론대책 문건을 없애 버렸다. 또 문건의 원본파일이 보관된 노트북 하드디스크 자체를 통째로 바꿔버렸다. 이는 문기자가 문제의 문건을 ‘극비문건’으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나타내준다. 문기자는 그 문건을 6월 24일 이부총재에게 팩시밀리로 전송했다. 극비문건을 팩시밀리로 전송할 정도의 사이라면 매우 친밀한 관계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문기자와 이부총재가 정보 관계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교류를 해왔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문기자는 중국 베이징(北京)특파원 시절인 97년 2월20일 중국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사망을 특종 보도했다. 그 특종은 그가 사귀어둔 중국인 친구의 제보로 이뤄진 것이다. 그 정도로 문기자는 중국 정보에 밝았다.
이부총재도 새정부 들어서 정보를 가장 필요로 하는 안기부장에 취임했다. 특히 그는 안기부장에 취임하자마자 ‘해외정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따라서 이부총재와 문기자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교류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 검찰은 문기자 소환 이틀이 지나도록 이부총재와의 대질신문 계획조차 밝히지 않아 의혹을 사고 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