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한국성적’은 ‘부패코리아’의 현주소였다. 바로 이런 점에서 많은 이들의 시선이 동아일보사와 참여연대가 공동주최해 24,25일 이틀간 열린 ‘국가투명성 확보와 부정부패 방지를 위한 대토론회’에 쏠렸다.
토론회에서는 21세기 ‘클린코리아’ 건설을 위한 제안과 지적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수십년 동안 켜켜이 쌓여 얽힌 부패의 ‘매듭’을 끊기 위한 참여자들의 비판은 날카로웠다.
보다 구체적으로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하고 처벌하기 위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신설과 관련해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시민참여를 위한 제도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정부관리의 예산부정 예산낭비를 주민소송으로 해결하자는 제안은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내부고발자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미국의 시민단체 GAP의 사무총장을 초청, 선진국의 시민운동을 한수 엿보는 기회도 마련됐다.
한국부정부패의 ‘완전한 근절’을 촉구하는 한 목소리로 이틀 동안 발표된 4개의 주제문을 요약, 게재한다.
▼정부 부패방지 종합대책에 대한 종합평가▼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사결과 한국의 부패지수와 뇌물공여지수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고위공직자들의 부패문제는 과거정권에서 일어났을 뿐 현정부는 깨끗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공직사회의 광범위한 부패는 연계화 대형화 만연화돼 있으며 이런 부패가 제도적이고 구조적으로 일어나는 데 심각성이 있다.
물론 현정부에서도 부패척결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협약 발효 등 국제환경변화에 따라 8월에 부패방지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반부패기본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지적할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부패방지종합대책과 관련해 이 대책의 핵심인 반부패특별위원회가 자문위원회에 불과하고 수사권 등의 침해를 우려한 검찰 등 사정기관의 반발이 심해 위상과 권한이 크게 흔들릴 우려가 높다.
게다가 ‘공직자의 직업윤리 확립’과 ‘국민에 대한 홍보 강화’ 등은 역대 정권에서부터 남발돼 온 공약에 불과하다.반면 시민감사청구제도와 시민감사관제도, 고발자보호제도, 고발보상제도 등의 도입을 밝힌 것은 신선한 발상이다. 그러나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불분명해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반부패기본법도 문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 법은 부패방지기본제도의 ‘통합법’이 아니라 기존법규를 그대로 두는 것을 전제로 부패방지와 추방 등 기본적인 조항만을 나열하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반부패특별위원회의 실효성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이밖에 일반 시민단체에 고발과 소송제기권을 부여하는 문제 등도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박원순<참여연대 사무처장·변호사>
▼공공기록물 관리와 정보공개제도 개혁방안▼
정보공개의 기본적인 목적은 국정운영에 시민을 참가시켜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단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보’관리가 잘 돼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국내에는 국가 전반의 기록물을 관리하는 일반법이 없고 대통령령으로 ‘사무관리규정’만 있었다. 일반법으로는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올해 1월 공포된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기록관리법)’이 내년 1월 시행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통일된 기록관리조직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보(기록)의 정비가 시급한 이유는 무엇보다 이것이 단순한 행정사무의 적절한 수행을 위해 필요한 차원을 넘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의 대상이 되는 기록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가 있을 경우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현재 정보공개법에서는 문서 도면에서부터 마이크로필름 슬라이드, 컴퓨터출력물까지 정보공개 청구가 가능하며 공개 여부의 결정은 청구일로부터 15일 이내에 내려져야 한다.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15일 이내에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를 공개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 우선 행정사무를 위한 보관차원의 관리를 넘어 정보제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체계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조직적 체계적인 기록관리시스템 도입 △행정정보화에 따른 전자적 기록시스템 도입 △중요문서의 기록작성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
경건<서울시립대 교수·법학과>
▼예산낭비와 시민참여-예산부정방지법 제정▼
정보공개청구제도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시민참여제도는 ‘과연 있기나 한 것이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정부예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차원의 법적제도로서 예산부정과 예산낭비방지를 위한 시민참여제도는 사실상 전무하다.
미국을 예로 들면 정보공개제도와 공익제보자보호제도는 물론이고 납세자가 연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위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납세자소송제도까지 잘 정비돼 있다. 86년에 개정된 FCA(False Claims Act)는 일반 개인이 소송을 내 승소할 경우 승소금액의 최대 30%까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지방자치법을 통해 주민감사청구제도와 주민소송제도를 법제화, 주민의 감시와 통제를 권리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같은 장치가 전혀 없다. 따라서 ‘예산부정 및 예산낭비 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
법안에는 우선 전문성을 갖춘 외부인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시민감사관제도’를 도입해 시민감사청구를 맡기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납세자소송과 주민소송제도도 빼놓을수 없다. 이 제도는 시민참여제도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데 소송은 단 1명의 국민이라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부제보 활성화를 위해서 미국의 FCA처럼 공익제보자가 소송을 제기해 부정하게 유출된 예산이 환수되면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도입해야 한다.
하승수<참여연대 납세자운동 기획팀장·변호사>
▼해외의 반부패운동-GAP▼
내부고발자(내부양심선언자·whistleblower)는 77년 워싱턴DC에서 열린 내부양심선언대회를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국방부의 한 연구원이 베트남전쟁에 관한 정부의 음모와 거짓을 확인하고 이를 공개하자 언론에선 즉각 그를 지지했지만 정부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를 돕기 위해 내부양심선언대회가 열렸고 내부고발자보호단체 GAP(Government Accountability Project·정부책임성확보프로젝트)가 출범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내부고발자를 변절자 쯤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GAP는 이들이 자신의 일터를 얼마나 사랑하며 국가와 시민, 공중보건과 안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인지를 알리는데 주력했다. 그러던 중 86년 챌린저호 폭발사건이 일어났다. 청문회에서 많은 엔지니어들이 챌린저호의 결함을 발견하고 발사를 저지했었다는 사실이 내부직원들에 의해 밝혀졌다. 증언을 한 3명의 직원은 직장에서 강등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았지만 시민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고 이들에 대한 격려도 쏟아졌다.
내부인사들이 직장 비리를 외면하는 이유는 보복 때문이 아니다. 폭로해봤자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사회를 개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하며 이들이 서로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도록 도와야 한다.
10년 투쟁끝에 89년 ‘내부양심선언자보호법’이 제정돼 내부고발자에 대한 법적보호장치가 마련됐다. 그 덕분에 내부고발자들의 승소율이 0.2%에서 20%까지 급증했다.
GAP는 앞으로도 내부고발자들이 자유롭게 ‘고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루이스 클라크<美GAP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