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로비 최종보고서]최초보고서와 다른점

  • 입력 1999년 11월 26일 07시 11분


청와대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이 작성한 ‘최종 내사보고서’는 배정숙(裵貞淑)씨측이 공개한 ‘최초 내사보고서’보다 내용이 정교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많은 부분이 변질된 것으로 밝혀졌다.

본보취재팀의 취재 결과로는 최종보고서의 작성시점은 1월말인 것으로 추정된다.

두 문건 내용에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은 김태정(金泰政)전법무부장관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와 관련된 대목이다.

최종보고서는 연씨가 호피무늬 밍크반코트를 구입한 경위 등에 관해 짤막하게 기술하고 있다. 요지는 연씨가 98년 12월 26일 라스포사에서 산 모직코트를 반품하기 위해 갔다가 일행의 권유로 문제의 밍크반코트를 입어봤는데 일행이 잘 어울린다고 하자 정일순(鄭日順)사장이 이 밍크반코트를 포장해 넣어 주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정사장이 전화를 걸어 “밍크반코트 가격이 700만∼800만원인데 400만원만 받겠다”고 하자 연씨가 “검찰총장 부인이 고가의 옷을 입을 수 없다”며 반환하겠다고 말한 뒤 ‘며칠 후’ 이를 반환한 것으로 경위를 기록했다.

최종보고서를 작성한 측이 밍크반코트의 구입 여부부터 반환시점까지의 사실관계를 애매모호하게 작성한 이유는 자명한 것 같다. 궁지에 몰린 연씨를 보호하고 이 사건의 실체가 ‘실패한 로비’라는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특히 사직동팀은 최종보고서에서 ‘내사결과 검찰총장 부인은 밍크코트를 구입하거나 이형자씨에게 대금지불을 요청한 사실이 없음이 확인됐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밍크반코트의 구입경위를 보면 최종보고서와 최초보고서는 확연하게 다르다. 연씨는 당시 “정사장이 말도 없이 투피스와 함께 밍크반코트를 쇼핑백에 넣어서 주는 바람에 집에 와서 쇼핑백을 펼쳐 보지도 않고 있다가 2,3일 뒤에 반코트가 들어 있는 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배정숙 이은혜(李恩惠)씨는 “연씨가 외상으로 구입해 간 것”이라고 분명히 진술했다. 라스포사 종업원 이혜음씨는 한술 더 떠 “연씨가 값이 얼마냐고 물어 사장님(정일순)이 값은 잘 해드릴 거라고 말한 일이 있고 연씨가 사가기로 해서 투피스 한벌과 함께 포장을 해줬다”고 말했다. 정사장도 같은 취지로 진술해 연씨가 밍크반코트를 외상으로 구입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최초보고서는 기술하고 있다.

최종보고서를 작성한 측이 연씨가 밍크 반코트를 구입한 경위와 반환시점 등을 관련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자세하게 제시한 최초보고서를 묵살하고 연씨가 밍크반코트를 구입한 일이 없다고 단정한 것은 분명한 ‘축소조작’이 아닐 수 없다.

또 최종보고서에는 최초보고서가 간략하게 기술한 ‘영부인에 관한 사항’이 많이 나온다. 최초보고서는 정사장의 진술을 근거로 “정일순이 영부인을 만나고 나온 당일 이형자씨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영부인을 팔고 다닌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화를 냈다”는 대목 등이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일시 등이 없고 정사장의 진술만 소개하는 간략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최종보고서에는 ‘98.11.7 이형자가 정일순에게 밍크코트 1벌을 영부인님께 선물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정일순이 거절’ ‘98.12.17 이형자가 정일순에게 영부인께 육포와 편지를 전해드려 달라고 부탁했으나 정일순이 거절’ 등으로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이와 함께 최초보고서에는 옷로비 의혹과 관련한 이런저런 음해성 유언비어가 이형자씨에 의해 횃불선교회 교인들에게 일부 유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최후보고서는 음해성 유언비어가 유포된 경위에 관해 이형자씨측의 ‘자작극’으로 보인다고 훨씬 강하게 단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순영(崔淳永)신동아그룹 회장측은 사법처리 과정에서도 석연찮은 점이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직동팀 내사결과는 이씨를 주범격으로 기술한 반면 몇개월 뒤의 검찰수사에서는 배씨가 전면에 등장하는데 사직동팀의 내사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옷 로비 의혹사건 자체는 사직동팀의 내사결과나 검찰수사와 마찬가지로 ‘실패한 로비’ 혹은 ‘사기 미수극’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최초보고서와 최종보고서의 내용이 현격히 다르게 축소 조작 변질돼 대통령에게 허위 보고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최영훈·부형권기자〉c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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