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날 오전 최특검팀에 전화를 걸어 “자진출두해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히겠다”고 통보한 뒤 오후 2시반 기자실에 팩스를 보내 “사직동팀 문건과 관련한 특검의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특검팀 등 법조계 일각에서는 그가 사직동 최초보고서나 옷로비 사건에 대한 모종의 ‘진실’을 폭로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전비서관은 특검 사무실에서 “사직동 최초보고서를 본 적도 없고 옷사건 내사사실을 사전에 김태정(金泰政)당시 검찰총장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법조계에서는 ‘구속설’이 나돌고 있는 박전비서관이 검찰 소환을 앞두고 특별한 내용도 없이 특검에 자진 출두한 배경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친정인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것은 여러 모로 괴롭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우선 특검에서 편하게 해명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반면 27일 특검팀에 나와 조사를 받은 신동아건설 박시언(朴時彦)고문의 발언 내용을 탐지해 미리 해명하려 했다는 분석과 단순한 ‘시간벌기’라는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 이는 특검에 나가 나름대로 해명과 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대검의 소환에 바로 응하지 않으면서 사태의 진전 상태를 살피겠다는 의도라는 것.
이같은 분석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특별지시를 받은 대검이 당장이라도 그를 구속할 분위기인데다 현재로서는 사법처리를 막아줄 아무런 방패도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조용히 자숙하며 검찰 처분을 기다려야 할 그가 아직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섣불리 해명하려다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의 출두에 대해 최특검측은 일단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배정숙(裵貞淑)씨측이 22일 문건을 공개한 뒤 관련자들이 줄줄이 자진출두해 ‘고해성사’를 하는 유리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문건 유출과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축소은폐 조작의혹은 특검법이 정한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제발로 찾아와 해명하는 사람까지 막을 수 없다”며 ‘수사’아닌 ‘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한편 특검팀은 박전비서관의 출두를 끝으로 수사와 조사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조만간 수사 발표를 위한 정리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