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헌법의 기틀이 됐던 대한민국 헌법초안이 51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정부수립 직전인 1948년 4월 고(故) 현민 유진오(玄民 兪鎭午)박사가 직접 쓴 육필원고가 1일 부인 이용재(李容載·78)여사에 의해 유박사가 총장을 지낸 고려대에 기증됐기 때문.
★국회 심의과정서 수정
하지만 유박사의 헌법초안을 보면 의문점이 생긴다. 좌우 대립이 극에 달한 당시 상황에서 왜 유박사가 ‘조선’ ‘인민’처럼 좌파들이 더 자주 사용했던 용어를 썼느냐는 것. 유박사가 썼던 ‘조선’과 ‘인민’이라는 용어는 결국 국회 심의과정에서 ‘대한민국’과 ‘국민’으로 수정된다.
유박사와 친분이 두터웠던 헌법학자 김철수(金哲洙) 탐라대 총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민’이라는 단어는 ‘국민 전체’라는 의미가 배어 있어 전체주의적 또는 국수주의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인민’은 국민 개개인의 총합으로 볼 수 있으며 개인적 의미가 강합니다. 따라서 독일 나치정권은 ‘나치온’, 즉 ‘국민’이라는 용어를 즐겨 썼고 프랑스 혁명정권은 ‘인민’이라는 용어를 썼지요. 유박사는 비록 좌익계열에서 ‘인민’이라는 말을 선점했지만 천부인권(天賦人權)의 의미를 내포한 ‘인민’이라는 용어를 좋아했습니다.”
‘조선’이란 국호는 당시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조선’으로 표기한데다 ‘이씨 조선’과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유박사가 사용했지만 이 역시 북한이 국호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하는 바람에 국회 심의과정에서 바뀌었다.
★헌법연구에 큰 도움
이날 오후 이여사와 아들 유종(兪淙·43·울산시향 상임지휘자)씨가 고려대에 기증한 사료들은 △헌법 초안 △기본권 연구자료 △한일회담 관계자료 등으로 모두 6개의 목재함에 보관돼 왔다. 기증식에 참석한 김총장은 “지금까지 제헌헌법 원부가 남아 있지 않아 몹시 안타까웠다”며 “우리나라 헌법연구에 큰 기여를 하게 됐다”고 높이 평가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