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그룹 임원인사 주춤… "구조조정본부가 걸려…"

  • 입력 1999년 12월 9일 19시 48분


재벌들이 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룹 실세들이 포진하고 있는 구조조정본부 존치 여부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이 혼란스러운 ‘신호’를 보내는데다 그룹 내부적으로도 재무와 기획부문 어느 쪽에 무게를 둬야 할지 종잡기 어렵기 때문.

이런 가운데 원화환율이 급등하고 노사관계 등 외부 경영환경도 흔들리고 있어 각 그룹의 구조조정본부는 곤혹스러운 처지다.

◆해체여부 몰라 혼란

▽구조조정본부의 미래〓현대 삼성 등 4대그룹은 최근 재경부 금융감독위 관계자들의 ‘구조조정본부 내년초 해체’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98년초 발족한 구조조정본부를 정부가 비서실 경영에서 이사회 중심 경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필요악적인’ 존재로 인정해왔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금감위등이 여전히 그룹단위의 각종 자료집계 등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해체발언이 나오자 혼란이 가중된 것.

A그룹 구조조정본부 임원은 “정부가 구조본의 해체를 요구하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시기에 따라 구조본과 계열사 임원인사의 폭이 크게 달라진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그룹은 금주초 사장단인사를 발표하려다 상황을 더 살피기 위해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재경부측의 발언은 원론적인 입장을 강조한 것일 뿐”이라며 “부채비율 목표를 맞췄다고 해서 구조조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공정위측은 현 구조조정본부 기능이 과거 총수의 친위대격인 비서실조직과 판이한 만큼 서둘러 해체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

▽‘재무통이냐,기획통이냐’〓외환위기 이후 2년여 동안 30대그룹은 대부분이 현금흐름을 극도로 중시하는 내핍경영을 펼쳤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룹내 재무통들이 ‘득세’했다. 삼성그룹의 K전무(41)나 LG그룹의 K부사장(51) 등은 대표적인 초고속 승진사례.반면 확대 일변도 시대에 중용된 기획부문 임원들은 잠시 계열사 ‘현장’에 나가있거나 해외연수를 떠난 경우가 많았다.

◆재무-기획등 저울질

그러나 경기가 살아난데다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그룹들이 정보통신 인터넷 등 지식산업분야에 대대적인 투자계획을 밝히면서 ‘재무관리통’과 ‘기획통’간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B그룹 임원은 “재무 관리형 임원들은 신사업투자에 따른 위험을 기피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최고경영자 입장에서 인선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시간벌기〓원화가치의 급등과 장기 차입시장의 ‘부재(不在)’ 등 금융시장 불안도 내년 경영계획의 중대한 변수. 현재의 불안이 증폭된다면 이미 작성한 내년 사업계획의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며 이에 따라 그룹 핵심포스트의 인선내용도 바뀔 수 있다.이같은 우려 탓에 이달 초 사장단 인사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던 주요 그룹들은 상황추이를 보아가며 이달 중순 이후 인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박래정·이명재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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