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국민 세금으로 여당 선거운동하자는 것 아니냐”는 이 논란은 우리 정치의 후진적 구태(舊態) 중 대표적 사례. 바로 현재 야당인 한나라당 집권 시절 실시된 4년 전 15대 총선 때도 예외없이 벌어졌었다.
그러나 ‘새 정치’ ‘개혁정치’를 표방하며 DJ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이같은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는 건 정권교체와는 별 관계없이 정치발전이 아직 요원한 과제임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
유권자들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이 쏟아낸 각종 선심성 정책들을 점검해보고, 과거에는 어떤 ‘사술(詐術)’이 동원됐었는지를 되돌아보고, 전문가들이 내놓는 처방 등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회 예결위가 계수조정에 들어간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편성이라는 비판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교원의 정년연장을 다시 시도하고 신용불량자의 밀레니엄 대사면을 추진하는 것도 선심성 정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각종 사업중에는 시급하지 않거나 재원 마련계획이 불투명한 것도 다수 포함돼 있어 선거때마다 나타나는 선심성정책 공세가 올해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선심성 의혹을 받는 예산〓정부가 올해초 500억원이상 신규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한 결과 목포∼광양간 고속도로와 진도대교 건설사업은 사회적 편익이 투자비용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내년 예산에 추진비용이 반영돼 있다. 이필상(李弼商)고려대 교수는 “전남은 전국 9개도에서 도로율이 가장 높은 반면 자동차보유율은 가장 낮다”며 “사업을 추진할 경우 1조원가량의 손실이 예상되는 대표적인 선심성 예산”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또 감사원 등의 재검토요구에도 불구하고 내년 예산에 전주신공항 건설에 25억원을 배정했다. 전주YW
CA 전북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 조차 “인근에 군산공항이 있는데다 전주∼군산간 고속화도로 건설로 전북지역의 항공수요가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데도 공항을 하나 더 건설하는 것은 비효율적 투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산 신발산업과 광주 광(光)산업등에도 신규로 1200억원을 배정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사업개요도 없는 상태이며 최근 건설교통부가 74조원을 투입키로 한 4개 광역권 개발계획안도 재정여건을 감안하면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장밋빛 청사진’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군산 장항권의 경우 17조178억원의 사업비 가운데 무려 58.4%를 민자유치로 조달토록 해 실현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조세연구원의 박기백박사는 “보는 시각에 따라 선심성예산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예산심의과정에서 이를 엄밀히 따져 예산의 낭비를 줄이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선심성 정책의 남발〓최근 당정협의에서 농어업경영자금 대출금리를 현행 5%에서 3%로 인하하기로 합의, 법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농어촌부채경감특별법’도 대표적인 선심정책. 정부는 5월 단위조합의 상호금융자금을 정책자금으로 바꿔주면서 760억원을 특별지원하는 등 IMF이후 모두 4차례에 걸쳐 1조4620억원가량의 농어가부채를 이미 경감해줬다. 농어가 부채가 도시가구 부채보다 심각하다는 조사결과도 없는 상황에서 농어민에게만 IMF이전보다도 낮은 파격적 금리로 혜택을 주려는 속셈에 대해 의혹이 일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200만 신용불량자에 대한 구제론도 금융권 등에서는 경제원칙을 무시한 선심정책으로 거론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 가운데 개인의 채무를 구제해준 선례는 전혀 없다”며 “발상 자체가 난센스”라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한편 세제정책에서도 소주세율을 80%로 인상하려다 72%로 재조정한 것이나 △목적세 폐지의 백지화 △상속 증여세 평생 과세후퇴 등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특히 정부는 당초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의 과세형평을 꾀하기 위해 과세특례 제도를 없애고 간이과세의 적용을 연간매출액 4800만원 미만으로 제한할 계획이었으나 국회심의 과정에서 간이과세의 한도를 연간매출액 6240만원범위내에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후퇴했다.
〈임규진·송평인·박현진기자〉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