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기술자' 이근안 10여년 도피극 조연은 검-경

  • 입력 1999년 12월 16일 19시 28분


주인공이 ‘도망자’인 영화에서 그를 쫓는 조역들은 바보같이 그려진다. 코 앞에 있는 주인공을 번번이 어이없이 놓치기 때문이다.

‘고문경관’ 이근안(李根安)씨를 10년 넘게 추적한 검찰과 경찰도 그런 영화의 조연들 같았다.

89년 2월 대검 중앙수사부의 추적수사반이 이씨가 숨어 있던 서울 일원동 공무원 임대아파트에 들이닥쳤다. 추적반은 이씨 가족의 동의를 받고 아파트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허탕이었다. 당시 이씨는 안방 옷장 안에 숨어 있었지만 추적반이 그 곳만 수색하지 않은 것.

수사관 중 1명이 옷장 문만 열어봤어도 이씨의 도피극은 2개월 만에 막을 내릴 수 있었다.

95년 봄 서울지검 강력부의 추적전담반이 서울 용두동 이씨의 집을 찾아갔다. 당시 집에는 이씨 혼자밖에 없었다. 수사관들은 초인종을 몇 번 눌러도 인기척이 없자 그냥 돌아갔다. 숨죽이고 수사관들의 동태를 살피던 이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검찰은 86회에 걸쳐 잠복 탐문 미행 수사를 벌였으나 자기 집에 숨어 있는 이씨를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경찰의 추적기는 한술 더 뜬다. 경찰은 이씨가 박처원(朴處源)전치안감의 지시로 도피를 시작한 날(12월24일)로부터 일주일 후(12월31일)에야 수배령을 내렸다. 첫 출발부터 미온적이었던 것.

경찰은 경기도경 등을 중심으로 41명의 경찰관을 추적검거반으로 편성했고 이씨를 중요지명수배자로 분류, 전국 경찰에 26회나 검거 지시를 내렸다. 검문검색도 358회나 벌였다.그러나 경찰이 애꿎은 행인을 수없이 붙잡는 동안 이씨는 90년 7월부터 따뜻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다. 이씨의 집을 관할하는 동대문경찰서와 용두파출소는 이씨 부인이 경영하는 미용실을 매월 1∼4회 방문해 분위기를 살피는 것이 탐문수사의 전부였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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