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김씨에 대한 고문을 주도했던 박처원(朴處源)전치안감은 검찰에서 안기부 등 관계기관의 고문은폐 시도를 상세히 진술했고 검찰은 진술내용을 그대로 공개했다. 당시 관련자들은 이를 전면 부인하며 검찰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난데다 당사자들의 진술과 주장 외에 뚜렷한 물증이 없어 ‘역사적 공방’으로만 남을 공산이 크다.
▽고문대책회의 및 고문증거 폐기〓박전치안감이 검찰에서 한 진술내용에 따르면 김씨는 85년 9월4일부터 서울 남영동의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 도중 고문을 받고 같은 달 26일 검찰에 송치됐다.
이후 김씨에 대한 고문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안기부 대공수사국장과 수사단장, 서울지검 공안1부장과 주임검사, 박전치안감이 모여 합동 대책회의를 열어 김씨에 대한 면회 및 접견금지 등을 논의했다는 것.
이 무렵 김씨는 서울구치소로 접견을 간 이돈명변호사에게 상처 딱지를 떼어 건네줬다. 구치소측은 이 사실을 알고 이변호사로부터 딱지를 압수했다.
당시 구치소의 권모부소장은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에게 보고했다가 ‘알아서 하라’는 대답을 듣고 폐기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김씨의 주임검사였던 김원치창원지검장은 “사후에 딱지를 버렸다는 보고만 받고 이 내용을 상부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정형근의원 개입여부〓역시 박전치안감의 진술내용. 그에 따르면 김씨 고문사건은 당시 안전기획부의 자료제공과 조정 아래 이뤄졌으며 김씨 연행 다음날인 85년 9월5일 아침 안기부 대공수사단장이던 정의원이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방문해 수사상황을 보고 받고는 ‘혼을 내서라도 철저히 밝혀내라’고 말했다는 것. 박전치안감은 수사진행 상황을 당시 박배근(朴培根)치안본부장과 정의원에게 수시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의혹과 논란〓이같은 검찰의 수사발표는 이례적이다. 검찰발표는 박전치안감과 구치소 관계자들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할 수도 있다. 또 검찰은 관련 당사자들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김원치지검장은 전화조사만 했으며 최환변호사는 아예 조사도 하지 않았다.
일부 검사들은 “검찰이 사실관계에 대해 엄격한 검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고문은폐 의혹’을 공개했다”며 그 ‘배경’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이돈명변호사 일문일답▼
이돈명(李敦明)변호사는 16일 전화통화에서 “당시 김근태(金槿泰)씨가 고문으로 생긴 상처딱지를 건네주었는데 손에 쥐고 이야기를 듣다가 교도관에게 빼앗겼다”며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한스럽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씨를 접견할 때가 언제였나.
“기억이 희미하지만 검찰이 기소를 하고 1차공판이 시작되기 전인 것은 확실하다. 85년 9월말이나 10월일 것이다.”
―그때 상황을 말해달라.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접견을 가서 탁자를 마주놓고 앉았다. 김씨는 안전기획부에서 고문당한 이야기를 하더니 종이에 싼 무언가를 탁자밑으로 조용히 내밀어 ‘고문으로 생긴 것이니 증거로 써달라’며 전달했다.”
―왜 빼앗겼나.
“지금 생각해도 김씨나 나나 바보같았다. 그것을 주머니에 얼른 집어 넣을 일인데 한손에 쥐고 계속 고문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사이 교도관이 와서 ‘이게 뭐냐’며 빼앗아 갔다. 그 일은 15년 지난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법정에서도 안기부의 고문사실을 주장했나.
“물론이다. 그런데 재판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묵살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