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씨 고문 물증 폐기 의혹… "정형근씨 고문 개입"

  • 입력 1999년 12월 16일 19시 28분


85년 민청련 의장 김근태(金槿泰·현 국민회의 부총재)씨 고문사건 폭로 직후 당시 안기부와 검찰, 경찰이 합동대책회의를 열어 고문의 결정적 물증을 폐기토록 방조했다는 의혹이 검찰에 의해 제기됐다.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전경감의 고문 및 도피행적 등을 수사해온 서울지검 강력부(부장검사 문효남·文孝男)는 16일 수사결과를 발표, “김씨가 검찰에 송치된 직후인 85년 9월 말∼10월 초 김씨에 대한 고문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안기부 전희찬(全熹贊)대공수사국장과 정형근(鄭亨根·현 한나라당 의원)안기부대공수사단장, 서울지검 공안1부 최환(崔桓·현 변호사)부장과 김원치(金源治·현 창원지검장)검사, 박처원(朴處源)치안본부 대공수사단장 등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진술을 박전치안감으로부터 확보했다고 말했다.

임양운(林梁云)서울지검 3차장은 “박전치안감은 당시 대책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김씨에 대한 가족의 면회금지와 변호인 접견 차단, 김씨 몸에 난 상처 치유 등의 문제를 논의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임차장은 또 “당시 김씨는 수감중인 서울구치소에서 이돈명(李敦明)변호사를 만나 고문의 물증으로 몸에 난 상처의 딱지를 건네줬는데 구치소측이 이를 알고 압수해 당시 최환 공안부장에게 보고한 뒤 폐기했다”고 말했다.

임차장은 “당시 서울구치소 권모 부소장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자 최부장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대답해 권부소장이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임차장은 또 “김씨 연행 다음날인 85년 9월5일 정형근 안기부대공수사단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 김씨의 묵비권 행사 등 수사상황을 보고받고 ‘혼을 내서라도 철저히 밝혀내라’고 말했다는 진술을 박전치안감으로부터 확보했다”고 말했다.

박전치안감은 이에 따라 박배근(朴培根)당시 치안본부장에게 이근안전경감의 수사팀 합류를 건의해 그날 저녁부터 이전경감을 수사에 투입했으며 수사진행상황을 박전치안본부장과 정의원에게 수시로 보고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에 대해 정의원은 “검찰 발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검찰이 나를 고문사건의 배후로 얽어넣기 위해 온갖 해괴한 짓을 다해왔다”고 반박했다.

또 최변호사는 “딱지와 관련해 보고받은 일이 전혀 없으며 대책회의에 참석한 일도 없다”고 부인했다.

김원치지검장은 “대책회의에 참석했는지는 기억이 안나며 딱지는 나중에 구치소 간부로부터 버렸다는 보고만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가 당시 이전경감 등 치안본부 대공수사요원 9명으로부터 23일간 전기고문 등 각종 고문을 10차례 당한 사실을 밝혀냈으나 공소시효가 99년 8월15일자로 완성돼 내사종결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이전경감이 ‘반제동맹사건’과 ‘함주명 간첩사건’ 수사에도 개입해 박충렬(朴忠烈) 함주명(咸柱明)씨 등을 고문한 사실도 밝혀냈으나 공소시효가 완성돼 공소권없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그러나 박전치안감이 이전경감에게 도피를 지시했고 98년 6월29일 이전경감의 부인에게 생활비조로 1500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확인, 박전치안감을 범인도피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수형·신석호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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