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신관 사또는 어사또가 된 이도령의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금술잔의 좋은 술은 천명의 피), 옥반가효 만인고(玉盤佳肴 萬人膏·옥그릇의 기름진 안주는 만명의 기름)…”란 시구 하나에 혼비백산한다. 그리고 두 연인은 눈물 속에 해후한다.
일반인 55.4%가 그런 춘향의 얘기를 지난 1000년 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할 로맨스로 꼽았다.
춘향의 사랑이 ‘에로스적’이라면 16%의 ‘지지’를 얻어 2위를 차지한 이수일과 심순애의 신파는 보다 ‘현대적’이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좋았더란 말이냐. 놓아라 더러운 손”하며 순애의 손을 뿌리치는 수일의 대사가 너무 매몰차단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대중에겐 그래도 낯익은 러브스토리다.
황진이와 서경덕의 관계는 9.9%로 3위를 차지했다.
문예를 겸비한 황진이는 수많은 남자와 로맨스를 남긴 당대의 여걸(女傑).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고 하는 시조로 벽계수를 유혹했고, 한번의 춤사위로 10년 면벽한 지족선사를 허물어뜨렸을 만큼 당대 뭇 남성의 연인이었다.그러나 서경덕에 대한 사랑은 달랐다. 황진이는 “지족선사는 하룻밤에 무너졌지만, 화담(서경덕의 호)선생은 내가 가까이한 지 오래됐는데도 몸과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았다”고 한데서 나타나듯, ‘플라토닉’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