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혼재되어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드러나고 서로에 대한 이해나 조정의 기회가 된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 합당한 새로운 행위 규범을 찾아 다음 판결에 반영하는 계기도 된다.
그러나 판결을 잘못 이해하고 이에 기초하여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비생산적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이 따라야 하는 규범을 찾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칭 ‘황혼이혼’ 사건에 대한 최근의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논의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적법한 이혼사유가 있는데도 혼인기간이 긴 고령의 부부라 하여 이혼이 불허되는 것은 아니고, 가부장적 남존여비의 관념에 기초하여 여자배우자에 대해 남자배우자에 비해 더 엄격하게 이혼을 제한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실관계가 민법에서 인정하는 적법한 이혼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이러한데도 이 판결을 둘러싼 논의 중 일부는 이와 다른 전제에서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시작된 이 시대의 가족제도나 개인의 행복추구권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같은 오해로 말미암아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판결에 대한 활발한 논의나 평가는 판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며, 이는 결국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발전시킨다. 다만 그 논의 과정에서 사회적 낭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이태섭(대법원 송무심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