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최병모(崔炳模)특별검사의 수사 발표문에 등장한 밍크코트 10벌 가운데 사라진 4벌의 행방을 놓고 온갖 이야기가 무성하다.
“4벌은 판매상에 되돌려줬다”는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신동아그룹의 전방위로비 과정에서 고관부인들에게 전달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라스포사를 거쳐간 것으로 수사발표문에 등장하는 고관부인 관련 밍크코트는 모두 10벌. 라스포사가 중간상에게 사들인 6벌, 연정희씨가 입어본 3벌, 배정숙씨가 은밀하게 점찍어 둔 1벌 등이다. 이 가운데 특검수사로 행방이 드러난 것은 이형자씨 자매가 나눠 입은 2벌과 연씨가 가져갔다가 반납한 호피무늬반코트 1벌뿐이다. 연씨가 입어본 3벌 중 2벌과 배씨가 점찍은 1벌은 중간상에게 사들인 6벌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어 실제로 행방이 묘연한 것은 4벌인 셈.
웨딩드레스 전문점인 라스포사는 밍크코트는 전시판매하지 않고 필요할 때 중간상으로부터 조달해 단골에게만 판매해와 구매자의 신분이 분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씨는 “나머지 4벌은 지난해 11월 공급처에 반품했다”며 펄쩍 뛰고 있다.
특검팀은 “특검 수사대상은 아니었지만 밍크코트의 행방에 대해서는 검찰의 추가수사가 필요하다”고 수사보고서에 적시해 놓았다.
라스포사 직원들은 “지난해 12월19일 연씨가 찾아왔을 때 쇼핑백에 담긴 고급옷을 봤다”고 주장했다. 당시 연씨와 함께 왔던 이은혜(李恩惠)씨는 특검에서 “나는 거절했다”고 진술해 적어도 정씨가 쇼핑백을 고관부인들에게 전달하려 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정씨가 단골 밍크코트 공급자인 박혜순씨(51·여)에게 ‘장사하는 사람끼리’ 털어놓은 이야기를 보면 라스포사가 사들인 밍크코트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박씨는 “정씨가 지난해 말경 ‘당신에게서 구입한 물건을 값을 좀 세게 쳐서 팔았다. 누가 사다가 높은 사람에게 선물했는데 다른 고관부인들이 샘이 나서 청와대에 찔렀다’고 말했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정씨는 ‘경영상 비밀’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박씨의 신분을 철저하게 감춰오면서 박씨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정씨는 특검수사가 진행중이던 11월초 박씨가 입원 중이던 K대 한방병원을 찾아가 “사실을 감춰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이번 수사에서는 라스포사의 가짜상표 붙이기와 옷값 바가지 실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씨가 지난해 9∼10월 라스포사에 공급한 밍크코트 6벌의 총가격은 3600만원선. 이 가운데 550만원짜리는 3500만원, 750만원짜리는 2500만원에 지난해 11월5일 이형자씨에게 팔아 넘겼다. 구입가격의 6배로 불린 폭리규모도 놀랍지만 정씨는 대담하게도 프랑스제 샤넬, 이탈리아제 발렌티노 상표까지 붙여 고급 외국산인 것처럼 속였다.
박씨는 “라스포사측이 가짜 상표임을 알고 사갔다”고 진술했으며 이형자씨도 가짜임을 알고는 구입 후 상표를 일부러 떼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은 셈이다.
‘몰래 실려갔느냐’와 ‘외상으로 샀느냐’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연씨의 호피무늬반코트도 전달과정의 윤곽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라스포사가 1380만원의 가격표를 붙여놓았던 이 반코트는 정씨가 남대문시장에서 420만원에 구입한 중고제품으로 재확인됐다. 연씨는 같은 날 입어봤던 롱코트, 무릎까지오는 코트 등 밍크코트 두 벌도 각각 2400만원짜리 최고급품이었음이 밝혀졌다. 배씨도 밍크코트 한 벌을 눈여겨 봐뒀던 것으로 드러났다.
배씨는 옷로비 시도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19일을 전후로 해서 밍크롱코트 한 벌을 가리키며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넌지시 이야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배씨가 ‘찜’해 둔 밍크코트는 ‘제3의 거래처’에서 공급받은 것이었다.
특검팀은 “문제가 된 밍크코트중 나머지 4벌의 행방은 정일순씨가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입을 열지 않아 밝히지 못했다”며 “검찰수사에서 행방이 규명되길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검찰이 이를 밝혀낼지는 의문이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