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최병모(崔炳模)특별검사의 수사 발표문에 등장한 밍크코트 8벌 가운데 사라진 5벌의 행방을 놓고 온갖 이야기가 무성하다.
“4벌은 판매상에 되돌려줬다”는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신동아그룹의 전방위로비 과정에서 고관부인들에게 전달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특검은 옷의 행방과 관련해 매우 주목할 만한 얘기를 했다.
“연정희씨가 가져간 호피무늬 반코트가 1380만원이고 7분코트와 롱코트를 합쳐서 2400만원 가량된다. 정일순씨가 이형자씨에게 대납을 요구한 1억원 속엔 이 두벌과 다른 것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라스포사에선 김정길(金正吉)전대통령정무수석의 부인 이은혜씨와 천용택(千容宅)당시 국방장관의 부인 김아미씨 등에게 보내려 한 흔적이 있다. 다른 직원들도 김씨에게 보내려고 포장하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씨와 김씨는 안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옷값 1억원의 내용이 처음으로 밝혀짐에 따라 밍크코트의 행방에 대한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최특검은 그러면서 “정일순씨가 상당히 많은 의류를 여러 사람에게 보내려 한 것은 확실하다. 정씨는 상술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상술차원이 아니라고 본다. 정씨가 지난해 12월19일 다른 고위층 부인들에게도 옷을 보내려 한 흔적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일순씨가 계속 함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옷의 행방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결정적 단서다.
라스포사를 거쳐간 것으로 수사발표문에 등장하는 고관부인 관련 밍크코트는 모두 8벌. 라스포사가 중간상에게 사들인 6벌, 연씨가 가져갔던 호피무늬 반코트 한벌, 배정숙씨가 점찍었던 한벌 등이다. 이 가운데 특검수사로 행방이 드러난 것은 이형자씨 자매가 나눠 입은 2벌과 연씨가 반납한 호피무늬 반코트 1벌뿐이고 나머지 5벌은 행방이 묘연하다.
그러나 정씨는 “4벌은 지난해 11월 공급처에 반품했다”며 펄쩍 뛰고 있다.
특검팀은 “특검 수사대상은 아니었지만 밍크코트의 행방에 대해서는 검찰의 추가수사가 필요하다”고 수사보고서에 적시해 놓았다. 이은혜씨와 김아미씨가 옷을 가져갔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를 특검측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정씨가 쇼핑백을 고관부인들에게 전달하려 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정씨가 단골 밍크코트 공급자인 박모씨(51·여)에게 ‘장사하는 사람끼리’ 털어놓은 이야기를 보면 라스포사가 사들인 밍크코트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박씨는 “정씨는 지난해 말 ‘당신에게서 구입한 물건을 값을 좀 세게 쳐서 팔았다. 누가 사다가 높은 사람에게 선물했는데 다른 고관부인들이 샘이 나서 청와대에 찔렀다’고 말했다”고 특검수사과정에서 진술했다.
정씨는 ‘경영상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박씨의 신분을 철저하게 감추고 박씨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정씨는 특검수사가 진행중이던 11월초 박씨가 입원중이던 K대 한방병원을 찾아가 “사실을 감춰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이번 수사에선 라스포사의 가짜상표 붙이기와 옷값 바가지 실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씨가 지난해 9∼10월경 라스포사에 공급한 밍크코트 6벌의 총가격은 3600만원선. 정씨는 가짜 샤넬상표가 부착된 검은색 밍크코트 한벌을 550만원에, 롱밍크코트 한벌을 650만원에 구입했고 가짜 발렌티노상표가 달린 롱밍크코트 한벌을 750만원에, 메이커상표가 없는 코트3벌을 550만원씩에 사들였다. 이 가운데 550만원짜리는 3500만원에, 750만원짜리는 2500만원에 지난해 11월5일 이형자씨에게 팔아 넘겼다. 구입가격의 6배로 불린 폭리규모도 놀랍지만 정씨는 대담하게도 가짜 상표까지 붙여 고급 외국산인 것처럼 속였다.
박씨는 “라스포사가 가짜 상표임을 알고 사갔다”고 진술했으며 이형자씨도 가짜임을 알고는 구입 후 상표를 일부러 떼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특검측은 최순영회장의 구명로비용으로 구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몰래 실려갔느냐’와 ‘외상으로 샀느냐’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연씨의 호피무늬 반코트의 출처와 전달과정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라스포사가 1380만원의 가격표를 붙여놓았던 이 반코트는 정씨가 남대문시장에서 420만원에 구입한 중고제품으로 확인됐다. 연씨는 같은 날 입어봤던 롱코트, 무릎까지 오는 코트 등 밍크 두벌도 2400만원짜리 최고급품이었음이 밝혀졌다. 배씨도 밍크코트 한 벌을 눈여겨 봐 뒀던 것으로 드러났다.
배씨는 옷로비시도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19일을 전후해 밍크롱코트 한벌을 가리키며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넌지시 이야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배씨가 ‘찜’해둔 밍크코트는 ‘제3의 거래처’에서 공급받은 것이었다.
특검팀은 “문제가 된 밍크코트 중 나머지 5벌의 행방은 정일순씨가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입을 열지 않아 밝히지 못했다”며 “검찰수사에서 행방이 규명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으나 검찰이 이를 밝혀낼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