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집을 나서기 전에 박훈규(朴熏圭·38)기관사는 아내 김윤이씨(36)의 손에 한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쥐어주었다.
“아빠, 크리스마스 선물 꼭 사가지고 와야 돼.”
여섯살, 네살난 귀염둥이 두 딸의 볼에 입을 맞춘 뒤 저만치 사라져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 때만 해도 김씨는 그것이 남편과의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3일 오전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날벼락같은 사고소식을 접한 김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날 새벽 영국 스탠스테드공항 인근에서 남편이 탄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비보였다.
“그럴 리가 없어요. 남편은 반드시 살아 있을 겁니다.”
실낱같은 기대도 헛되이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사고소식을 접한 김씨는 참았던 오열을 터뜨렸다.
박기관사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출근길에 아내에게 건넨 카드에는 가족을 향한 가장의 깊은 사랑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
‘올 한해도 변함없이 나와 아이들을 위해 베풀어준 당신의 희생과 사랑에 깊이 감사하오. 우리 가족의 밝은 앞날을 상상하며 이 아이들의 넓게 펼쳐진 미래를 생각하며 믿음과 사랑의 반석 위에 굳게 서는 가정이 되도록 항상 기도드린다오.”
항공대 출신인 박기관사는 88년 대한항공에 입사, 94년부터 B747기 항공기관사로 일해왔다. 91년 대한항공 승무원이었던 아내 김씨와 결혼했다.
〈윤상호·이정은기자〉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