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신부전증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해온 신장내과 전문의 박경식(朴庚植·40·충북 청주시)씨. 그는 의사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환자를 위해 자신의 장기를 서슴지않고 내놓은, 인간을 긍휼히 여길줄 아는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정신’의 소유자다.
박씨가 신장을 내놓기로 결심한 것은 96년. 만성신부전증 환자로 혈액투석을 받기 위해 3년째 자신의 병원에 드나들던 박모씨(26)를 위해서였다. 의료보호 대상자로 젊은 나이에 신부전증을 앓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던 이 청년은 당시 절망감으로 세상을 비관하고 있었다.
신장내과 전문의인 박씨는 만성신부전증 환자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루 4시간씩 받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혈액투석. 그리고 신장을 이식받지 않는 한 평생 투석을 받아야 하며 3일만 투석을 걸러도 생명을 잃는 치명적인 병이었다. 그는 이 병으로 육체와 정신이 모두 피폐해졌고 패기도 희망도 잃어가고 있었다.
“그 청년의 젊음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병만 아니었으면 세상을 품고도 남을 기개를 뽐낼 때였는데요.”
박씨는 환자를 위해 자신의 장기를 내놓기로 했다. 그의 ‘젊음’이 다시 활짝 피어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검사 결과 조직형이 서로 맞지 않았다. 조직형이 맞지 않으면 장기이식은 불가능하다.
박씨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시간을 보내다 3년이 지난 올해 4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찾았다.
장기기증본부는 ‘릴레이 장기이식’을 제안했다.
박씨와 조직형이 맞는 황규영(黃圭榮·38)씨가 박씨의 장기를 이식받았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황씨의 아내 김신애(金信愛·35)씨가 젊은이에게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각각의 조직형이 모두 일치했고 1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이식수술에 성공했다. 박씨의 숭고한 사랑이 한 젊은이에게 새천년과 새생명을 함께 안겨주는 순간이었다.
만성신부전증은 2개의 콩팥 모두가 한꺼번에 기능을 잃는 병. 사람은 1개의 콩팥만 있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때문에 장기이식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다.
하지만 자신의 신체를 떼어낸다는 거부감에 아직 장기기증이 널리 확산되지 못한 것이 현실. 의사인 박씨는 자신의 장기를 기증함으로써 기증자도 정상적인 생활에 아무 지장을 받지 않는 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셈.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며 한달 동안 자신의 선행을 감춰왔던 박씨는 “고통받는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의사의 도리”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장기기증운동본부 02―363―2114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