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민사 2부(주심 김형선·金炯善 대법관)는 17일 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원 유모씨 등 5명이 철도노조를 상대로 낸 대의원결의부존재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의원회의 대의원을 조합원의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에 의하여 선출하도록 한 구 노동조합법 20조2항은 조합의 민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강행규정”이라며 “예외적으로 간접 선거에 의한 대의원 선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원심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유씨 등은 전국철도노동조합 전국정기대의원대회가 96년 사업 계획과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기본급의 1%씩 걷던 조합비를 기말수당의 1%씩을 추가로 징수하기로 결의하자 대의원이 간선으로 선출됐기 때문에 철도노조의 결의도 무효라며 서울지법에 소송을 냈다.
1, 2심은 이에 대해 “철도노조가 총조합원 2만8000여명이고 전국에 걸쳐 9개 지방본부와 지방본부 산하 158개 지부로 구성돼 조합원을 특정한 일시 장소에 소집하여 총회를 개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간접으로 대의원을 선출하는 것도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으로 봐야한다”며 유씨 등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간선제 대의원 선출제도 무효 판결로 철도노조와 같이 간선에 의한 대의원 구성을 채택하고 있는 전력노조 담배인삼노조 체신노조의 규약은 소송이 제기될 경우 무효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 간선 대의원들이 결정한 내용에 대한 무효청구 소송과 간선 대의원이 뽑은 현직 노조위원장에 대한 직무정지가처분신청이 잇따라 제기되는 상황도 예상된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해당 산별노조의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노총 이정식(李正植)기획조정국장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노조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문제가 보다 중요한 문제”라며 “노조의 자율적 행위를 정부의 규제대상으로 삼고 일일이 간섭하는 노동법 체계는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헌법소원 등 법적 조직적 대응책을 검토중이다.
반면 민주노총은 “노조 민주화는 조합원의 참여에 있는데 해당 노조들은 그동안 낡은 선거관행으로 위원장과 대의원 등 집행부를 장악해 왔다”며 “대의원 직선제를 주창했던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을 완성하는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반겼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