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초등교 새교과서 '뻔한 교과서' 틀깼다

  • 입력 2000년 1월 26일 19시 17분


“네 소원이 무엇이냐”(산신령)

“저, 그러니까….”(용이)

“제 소원은 그러니까….”

“얘야, 듣는 사람은 바라보며 말해야지.”(산신령)

“저, 제 소원은 사람들 앞에서….”(용이)

“얘야, 말끝을 흐리지 말고 분명하게 말해야지.”(산신령)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을 잘 하고 싶어요.”(용이)

“음, 그래 그렇다면….”(산신령)

이는 3월 새 학기부터 초등학교 1학년생들이 1학기에 사용할 ‘국어-말하기·듣기’교과서 10쪽에 나오는 만화 주인공들의 대화 내용이다. 이 교과서 11쪽에는 산신령이 마지막 대화에서 용이에게 어떤 말을 했을지 생각해 보라는 질문이 나온다.

초등학교 1,2학년 교과서가 어린 학생들의 상상력을 키우고 스스로 문제 해결력을 기르는 재미있는 내용으로 새로 꾸며졌다.

이같은 변화는 ‘자율과 창의에 바탕을 둔 학생 중심 교육과정’으로 요약되는 제7차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이뤄진 교과서 개정의 결과다.

▽새로운 교과서의 특징〓국어, 수학,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등 새로 나온 초등 1, 2학년생 교과서 5책의 특징은 재미있는 실례나 삽화 등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호기심을 유발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도입한 점.

사람의 일생이나 민들레의 성장과정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접고 펴도록 한 날개 페이지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평가하는 스티커도 넣는 등 판에 박힌 기존 교과서의 틀을 상당히 깼다.

교과서의 학습량은 30% 가량 줄었지만 사고를 유도하는 ‘탐구형’과 어린이들이 개성에 따라 배울 수 있는 ‘선택형’으로 구성돼 학습의 질은 높아졌다. 또 사고력과 창의력, 다양한 개성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활동이나 심화학습 자료를 담고 있다.

교사들이 학습 유형에 따라 직접 교수법 문제해결 학습법 전문가협력 학습법 창의적 학습 개발법 역할 놀이법 등을 다양하게 활용토록 하는 한편 ‘한 걸음 더’ ‘되돌아보기’ ‘쉼터’ 등 쉽고 편안한 제목으로 학생들의 심화학습을 유도하고 있다.

새 교과서는 또 지질을 개선하고 디자이너를 동원해 편집해 보기에 편하다.

▽제7차 교육과정의 개요〓올해 초등학교 1, 2학년부터 적용돼 내년에는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학교 1학년 △2002학년도에는 초등학교 5, 6학년과 중학교 2학년, 고교 1학년 △2003학년도에는 중학교 3학년과 고교 2학년 △2004학년도에는 고교 3학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새 교육과정은 국가적으로 공통성을 지니면서도 지역 학교 개인의 다양성을 추구하며 자율성과 창의성을 신장하기 위한 학생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교 1학년까지는 국민공통교육기간(10년)으로 학생들은 국어 도덕 사회 수학 과학 실과 체육 음악 미술 영어 등 10개 과목에 대한 일관성 있는 교육을 받는다. 제6차 교육과정까지는 초등학교 때 배운 내용을 중학교 때 반복 학습하는 이른바 ‘나선형’ 학습구조를 이루고 있었으나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반복 학습량이 거의 없다.

고교 2,3학년은 26개 일반 선택과목과 53개 심화 선택과목 가운데 학생들이 관심있는 과목을 골라 일정한 분량 이상의 교과를 이수하면 된다. 마치 대학과 같이 교과목에 따라 교실을 바꿔가며 수업을 하게 된다. 현재의 학교는 학년제 중심으로 일정한 과목을 이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앞으로는 대학과 비슷하게 학기제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 모든 학생이 똑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고 능력 차이에 따라 단계형 심화 보충형 과목선택형의 3가지 수준별 교육을 받게 된다.

▽문제점과 대책〓일선 교사들은 교과서가 표지와 삽화, 내용구성 등에서 이전과 다른 참신함이 돋보이지만 현실에 맞지 않은 내용이 상당수 눈에 띈다고 지적한다.

소꿉놀이, 역할극 놀이 등 다양한 놀이를 통해 통합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잘 짜여 있지만 도시지역 과밀학급에서는 공간이 부족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도 있 다.

또 교사들이 새로운 학습체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며 수십개에 이르는 선택과목을 학생들의 선호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원도 크게 확충되어야 한다.

교육부는 이같은 지적에 대해 “97년 계획이 확정된 뒤 같은 해 8월부터 교과별 교육과정 시안을 만들어 일선 교사의 검토를 거치고 시범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등 충분한 준비과정을 거쳤다”면서 “제7차 교육과정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교원과 시설을 늘리고 문제점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하준우기자>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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