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원은 4만여명. 작년 11월30일 2만여명의 의사들이 장충체육관에서 모였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숫자다.
작년에는 토요일 진료를 마친 의사들이 오후 집회에 참가했지만 17일 시위는 평일이어서 환자에 대한 진료차질 등 의료대란도 우려된다. 무엇이 그들을 거리로 내모는가. 최근 의사들의 강경한 움직임은 의사들이 느끼는 생존권의 위기가 그만큼 절박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현 불가능한 사항을 요구함으로써 어렵게 탄생시킨 의약분업을 무산시키려는 것은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이기주의라는 비판도 거세다.
▼동네의원의 위기▼
정부는 작년 11월15일부터 그동안 의료보험에서 고시가로 보상해주던 의약품값을 병원에서 실제 구입하는 가격으로 상환해주는 의약품실거래가상환제를 도입했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이 내과 소아과 등 이른바 동네의원이다.
이 제도 도입 이전에 병원들은 고시가보다 낮은 금액에 제약업체로부터 의약품을 대량 납품받아 고시가와의 차액으로 높은 약가 마진을 취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실제 구입가로 의료보험에서 지급받게 된 것이다.
이날 집회를 주도하는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도 “정부가 저수가정책으로 인한 의료기관의 경영악화를 약가 마진으로 채우도록 인정해 그동안 동네 병의원이 운영돼 왔으나 실거래가상환제가 도입된 후 약가 이윤을 잃게 돼 병의원의 경영이 어려워졌다”고 시인하고 있다.
이러한 실거래가상환제로 모든 병의원들이 똑같이 피해를 보게 된 것은 아니다. 정형외과 치과 등 약품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곳은 별 상관이 없지만 상대적으로 약제비 비중이 높은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등은 예상 외의 타격을 입었다.
특히 이들 동네의원들은 국민 건강을 최일선에서 책임지는 의료기관으로 동네의원이 무너지면 환자들이 큰 병원으로 몰려들어 진료비 부담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의료전달체계도 왜곡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의사들의 요구▼
의사들은 비현실적으로 낮은 현재의 의료수가를 대폭 인상할 것과 의사 약사단체와 시민단체가 합의해 정부가 마련한 의약분업안까지 송두리째 부인하는 등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17일 시위를 주도하는 의쟁투는 △정부의 의약분업안 반대 △소신 진료가 가능한 적정수가 쟁취 △의료보험제도의 획기적 개선 등 의권회복을 목표로 삼고 의료수가 인상 외에 의약분업을 위한 선결조건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의약분업에 반대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의쟁투는 이를 위한 요구사항으로 △선진국 수준으로 전문 및 일반의약품 분류를 재조정하고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도를 철회하고 △교과서적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진료수가를 현실화할 것 등 7개항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의사들의 요구사항은 형식적으로는 정부를 향한 것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엄청난 액수의 국민 부담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의사들은 의약분업이 막상 7월부터 시행되려 하자 뒤늦게 ‘서구식 완전분업 쟁취’의 명분을 내세우면서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내세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의 대응▼
정부는 동네의원들의 경우 실거래가상환제 도입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15일까지 동네의원과 약국의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3월부터는 시행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현재 수가조정정책위원회에서는 진찰료 의약품관리료 처방료 조제료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7월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최근 물가인상분을 반영해 처방료 조제료를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규탄대회와 관련해 정부는 1단계로 의쟁투가 집단시위를 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2단계로 시위를 한다면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휴일이나 공휴일을 선택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의쟁투가 17일 집회를 강행해 병원들이 집단 휴업을 하게 될 경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에 따라 주동자를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1993년 이른바 한약분쟁 당시 약국들이 집단휴업했을 때 이 법에 따라 당시 약사 대표를 처벌한 전례가 있다.
<정성희기자>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