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산악인 복진영씨, 발가락 앗아간 히말라야 재도전

  • 입력 2000년 2월 11일 19시 55분


그는 말보다는 몸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90년 10월7일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정해 우리나라 등반사에 이름이 오른 에베레스트 정복자 27명 중 한사람인 복진영씨(40·경남 양산시). 그 해 등반으로 동상에 걸려 발가락 10개를 모두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고도 내년 히말라야 트랑고타워(파키스탄 영내)를 등반할 꿈을 갖고 있다. 트랑고타워의 높이는 6382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90도 각도의 암벽으로 세계의 최난코스 중 하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한 뒤 부산 클라이머스 산악회 회원으로 들어가면서 취미였던 등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복씨는 90년 가을 꿈에도 그리던 에베레스트 등정길에 나선다. 대한산악회 부산연맹과 일본 오사카 산악연맹이 함께 하는 한일합동 원정대에 끼게 된 것이다.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고 3개월간 특별 훈련을 마친 뒤 네팔 카트만두로 향했다. 5000m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후 몇 번이나 정상등정을 시도했지만 악천후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10월 7일 새벽. 노종백 대장, 김재수(부산솔뫼 산악회), 박창우(대구 파라마운트) 대원과 함께 정상 등정길에 올랐다.

날씨는 좋았고 등반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드디어 정상. 벅찬 감동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해발 8848m의 대류권 속 정상에서 허용된 시간은 단 5분. 살인적인 폭풍과 바늘처럼 내리꽂히는 태양빛을 받으며 사진 한 장 찍은 뒤 하산을 서둘렀다. 그런데 갑자기 사고가 발생했다. 뒤따라오던 셰르파(등반 보조원)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 베이스캠프와 긴박한 연락이 오고가면서 그들을 기다리느라 1시간이나 정상에서 체류해야 했다. 드디어 하산길. 복씨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려나가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8000m캠프에 잠시 머물러 손발을 녹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동상에 걸렸던 것이다. 치료가 급했지만 2차 단독 등반에 나선 함상헌 대원(대구 파라마운트)을 베이스캠프(5000m)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틀 뒤 함씨가 에베레스트 남동릉 8500m 지점에서 추락 실종됐다는 비보를 접해야 했다.

그 뒤 카트만두 병원에서 긴급 치료를 받은 복씨는 서울에 올 때까지만 해도 별일 없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막상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발가락 10개 모두 숯처럼 까맣게 말라붙어 관절이 똑똑 부러져 나갔다. 모두 잘라내야 했다. 죽고만 싶었다.

평생 오리처럼 뒤뚱뒤뚱 걸어야 하는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생명과도 같은 등산도 포기해야 했다. 20분이면 오르던 금정산(부산)을 무려 11시간 만에 올라가서는 산 꼭대기에서 목을 놓고 울었다. 사람을 만나기도 싫었다. 그때 부인 조현진씨(35)를 만났다. 암벽등반가였던 그녀는 복씨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줬다. 복씨는 다시 기운을 냈다.

“걷기부터 시작해서 암벽등반에 이르기까지 안쓰러울 정도로 장애를 이겨나가려고 애를 썼어요. 그 지독한 노력 덕택에 지금은 정상인처럼 걷고 뛰고 암벽도 오르내려요.”(부인 조씨)

암벽등반가에게 발가락은 더듬이 같은 것. 혹독한 훈련으로 발가락이 잘려나간 부분들을 더듬이 삼아 암벽을 오르내리는 그는 90년부터 고층 빌딩 유리창 닦는 일로 생계를 잇고 있다. 부산시내 웬만한 빌딩은 그의 손을 안 거친 곳이 없다.

“최소 8000만원이 드는 경비 마련이 제일 큰 고민”이라고 말하는 복씨는 “부지런하게 일해 내년에는 반드시 트랑고타워 정복에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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