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 문책인사 검찰 술렁]'제2 檢亂' 올까 긴장

  • 입력 2000년 2월 12일 20시 07분


검찰에 다시 파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옷로비 의혹 사건 등으로 역사상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심기일전해 새해를 맞은 검찰이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의 긴급체포 작전과 작전실패에 따른 문책인사를 둘러싸고 초긴장 상태에 들어섰다. 검찰수뇌부는 ‘법질서 확립’을 내세우며 정치권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고 있으나 일선 검사들은 “검찰이 왜 정치권 싸움에 말려드는 자충수를 두느냐”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또 일부 검사들은 수사책임자 문책에 대해 “검사 목숨이 파리목숨이냐”며 “작전실패도 문제지만 처음부터 불합리한 작전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게 한 권력층이 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상황이 악화할 경우 지난해 소장검사 집단서명 사태에 이어 ‘정치중립’을 요구하는 또 다른 서명사태가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 간부도 모르게 깜짝발표 ▼

○…대검 차동민(車東旻)공보관은 오후 2시10분경 기자실에 전화를 걸어 “이번 사태에 대한 검찰의 입장을 오후 3시에 발표하겠다”고 통보했으며 10분 뒤 공보관실 직원들이 기자실에 내려와 브리핑 테이블을 준비하는 등 발표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암시.

차공보관은 “검사들에 대한 인사조치가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책임이냐 아니면 정의원을 잡아오지 못한 책임이냐”라는 질문에 “잡아오지 못한 책임”이라고 단호하게 답변.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은 이날 오후 차공보관을 집무실에 불러 은밀히 발표를 지시해 대검 공안부장 등 검사장들도 이 사실을 발표 때까지 알지 못했다는 후문.

▼ "검사목숨은 파리목숨" ▼

○…검찰의 서울지역 공안업무를 총괄 책임지는 임승관(林承寬)서울지검 1차장과 정병욱(丁炳旭)공안1부장이 서울고검이라는 ‘한직’으로 물러났음에도 정작 당사자에게 사전통보가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사 결정 주체와 배경을 놓고 온갖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임차장과 정부장은 오후 3시20분까지 인사내용을 모르고 있다가 대검에서 서울지검 기자실에 보낸 보도자료를 보고서야 인사내용을 알게 됐다.

정부장은 오후 3시20분경 1차장 검사실에 보고하러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후 3시에 고검 전보발령이 났다”는 기자들의 말을 전해듣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인사주체가 검찰조직의 인사권자인 법무부장관이 아니라 검찰총장이었으며 그것도 전격적으로 결정됐다는 ‘파격’이 알려지자 검찰 내에서도 “검사목숨은 파리목숨”이라는 자조가 나오기도.

실제로 법무부 박영렬(朴永烈)공보관도 인사발표후 20분이 지난 뒤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인사 사실을 몰랐다”며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장관께서 아무 말씀이 없었다”고만 답했다.

▼ "수뇌부 또 자충수" 불만 ▼

○…지난해 검란파동때와 마찬가지로 정의원 사태에 대해서도 일선 검사들이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단이 엇갈려 제2의 검란과 같은 검찰내부의 파란가능성을 엿보이기도.

야권 성향의 한 검사는 “정의원이 앞으로 총선전에 폭로할 내용이 주는 손해와 정의원을 억지로라도 구속해서 받는 손해중 후자를 택한 것 같다”며 “수뇌부가 한번 둔 자충수를 만회하기 위해 조직에 칼을 대는 또다른 자충수를 택했다”고 말했다.

여권 성향의 다른 검사는 “정의원은 언젠가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며 서울지검 수사 책임자들이 수사의 ABC도 지키지 않고 실책을 저질렀다”고 말했으나 전격적인 인사조치에 대해서는 놀랍다는 반응.

○…이날 오후 1시 정시퇴근했던 일선 검사들은 서울지검장에 대한 엄중 경고 등 인사사실이 알려지자 ‘피의 토요일’이라며 정의원 사태로 조직이 또 한번 위기를 맞이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스러운 반응.

한 검사는 “아침에 정의원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수사책임자를 경질하는 것은 강한 수사의지라기 보다는 이쯤에서 ‘꼬리’를 자르고 상황을 정리하려는 것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다른 검사는 “일단 강한 수사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단일 수사에 대해 즉각적으로 수사책임자를 경질한 것은 조직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신석호정위용김승련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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