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검찰이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 체포과정에서의 물의를 이유로 12일 전격적인 문책인사를 단행한 데 대해 공식적으로는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며 정치권에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정의원 체포방침 자체가 검찰의 독자적 판단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는 거듭된 설명과 맥을 같이 하는 것.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인사에 대해 “발표 직전에 문책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연락만 받았을 뿐”이라며 “검찰이 하는 일에 대해 청와대나 여야 정치권 모두 가급적 언급을 삼가야 한다”고 언급.
그러면서도 청와대 내에서는 검찰의 단호하고도 이례적인 인사조치에 대해 향후 검찰의 행보가 심상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즉 정의원 체포 실패로 안팎으로부터 망신을 톡톡히 당한 검찰이 앞으로 ‘명예회복’을 위해 유사한 정치인 관련 사건에 대해 더 엄중하게 대응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직접적으로는 업무수행을 매끄럽게 하지 못한데 대한 인책이지만 검찰이 앞으로 이눈치 저눈치 보지 않고 원칙대로 엄중하게 법집행을 해나가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정의원이 고소 고발돼 입건됐으면 조사는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입법기관인 국회의 의원인데다 법조인 출신이 제멋대로 법을 유린하고 있는 행위를 검찰이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원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수사방침이 구속 수사 등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그러면서 통상적인 법집행절차만 ‘예외없이’ 밟아나갈 것이라는 설명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검찰의 강경대응으로 한나라당과의 대결구도가 한층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런 양상이 4월 총선의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았던 검찰의 ‘자충수’로 일격을 당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데 청와대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최영묵기자>ymook@donga.com
▼ 민주당-한나라당 ▼
검찰이 12일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 강제구인 실패에 대한 문책인사를 단행하자 여당은 “검찰이 알아서 하는 일”이라며 덤덤해 했으나 야당은 사정(司正)정국의 신호탄으로 간주하고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날 여야 내에서는 정의원 파문과 관련 공식 입장발표와는 달리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선거를 앞두고 왜 이런 일을 벌이나”(민주당), “민주 한나라당 모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자민련), “여권이 우리 선거운동을 다 해준다. 이렇게 우리를 도와줄 수가 있느냐”(한나라당)는 식으로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며 명암이 엇갈렸다.
○…민주당 이재정(李在禎)정책위의장은 이날 “검찰의 자체적인 검찰권 행사에 정치권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검찰 나름대로 판단 기준이 있을 테니 야당도 정치적 시각에서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 이의장은 이어 이번 인사로 검찰 내부에서 반발 여론이 심각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번 사건에 대해 당정간에 일절 협의가 없어 검찰이 하는 일을 지켜볼 뿐”이라며 언급을 회피.
그러나 민주당 내에는 검찰의 문책인사를 당연한 조치로 받아들이며 환영하는 반응이 많았다. 정동채(鄭東采)의원은 “군이 작전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즉각 문책을 하듯 검찰도 기강 확립 차원에서 인사 조치한 것 아니겠느냐”고 언급.
○…반면 한나라당은 검찰이 즉각 문책인사를 단행한 데에는 이번 사건에 대한 청와대 연루의혹을 희석시키기 위해 사정 정국으로 몰아가려는 방침이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
정형근의원은 “검찰이 나를 구속시키려고 작심한 것 같다”면서 “이번 문책인사는 여권핵심부의 치밀한 기획 하에 표적사정을 강행하겠다는 경고로 보인다”고 주장. 그는 또 “검찰이 나를 체포하려 한 것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인데도 불구하고 문책인사를 통해 청와대 개입 의혹을 부인하려는 것”이라고 부연. 이사철(李思哲)대변인은 “선거를 두달 앞두고 현역의원을 체포하겠다는 것 자체가 잘못인데도 체포에 실패했다고 문책하는 것은 여권의 강경대응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며 비난. 이대변인은 이어 “앞으로 야당의원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러나 편파 보복사정을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
한편 그동안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여권이 병무비리 수사뿐만 아니라 조만간 중진의원 등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한나라당을 압박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었다.
<송인수기자> 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