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원은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판단기획국장 1차장과 신한국당(현 한나라당) 정세분석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용공 색깔 시비 등을 제기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발목을 여러 차례 잡았던 인물.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DJ 킬러’다. 여당과 검찰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
98년 2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여권과 검찰 주변에서는 ‘손 볼 대상 0순위’로 정의원이 거론됐다.
당시 정의원은 오익제(吳益濟)전천도교 교령의 월북사건과 관련해 김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발된 상태. 검찰은 6차례나 소환장을 보내며 단호한 수사 의지를 보였지만 정의원은 “야당 탄압”이라며 번번이 불응했다.
검찰은 결국 이 같은 정치공세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서면진술서만 받고 정의원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1라운드는 정의원의 ‘판정승’.
99년 하반기 ‘언론대책문건’ ‘빨치산 발언’ 등 정의원이 입을 열 때마다 정치권이 들썩거렸고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모든 부담은 고소 고발을 통해 검찰로 넘어왔다.
지난해 12월 정의원은 서울지검 공안1부(DJ 1만달러 수수 사건), 형사3부(언론문건 사건), 강력부(김근태씨 고문사건) 등 3곳으로부터 동시에 소환 통보를 받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정의원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내세우며 소환에 전혀 응하지 않았고 한나라당도 ‘방탄국회’를 열어 ‘야당의 1등 저격수’를 감쌌다.
검찰이 12일 밝힌 정의원 관련 사건은 모두 24건. 정의원이 고소한 것이 15건이고 고소나 고발당한 것이 9건이다. 검찰 소환에 불응한 것은 무려 23회.
임휘윤(任彙潤)서울지검장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빨치산 발언’ ‘언론대책문건’ 사건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긴급체포라는 강제수사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한 검찰 간부는 “정의원은 검찰 출신이기 때문에 검찰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정말 다루기 힘든 피의자”라며 “후배들과 검찰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정국 상황이 변하면 몰라도 현재로서는 정의원이 제 발로 검찰청사를 찾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검찰안팎의 지배적인 관측.
정의원은 12일 긴급체포를 당할 뻔한 위기를 모면하자 곧바로 ‘이종찬(李鍾贊)전국정원장과 문일현(文日鉉)전기자의 전화통화 의혹’을 폭로하면서 ‘언론대책문건’ 사건의 불씨를 되살렸다. 검찰 관계자는 “정의원은 궁지에 처하면 새로운 폭로로 국면을 전환하곤 했다”며 “이번 폭로도 ‘나는 건드리면 터뜨리는 사람’이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이거나 메가톤급 폭로의 예고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