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미군범죄 왜 끊이지 않나

  • 입력 2000년 2월 23일 19시 12분


19일 발생한 이태원 외국인술집 여종업원 살인사건의 범인이 미8군 소속 미군상병으로 밝혀지면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주한미군 범죄의 근본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술에 취한 미군이 변태적인 성행위를 거절하는 한국여성을 살해한 이 사건은 92년 경기 동두천시에서 미군에 의해 잔혹하게 저질러진 윤금이씨 살해사건을 연상시키며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근절되지 않는 미군범죄의 원인으로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SOFA)을 지목하며 이 협정이 개정되지 않는 한 한국의 사법권을 경시하는 미군의 범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미군범죄 실태 ▼

1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외국인전용 클럽에서 이 업소 여종업원 김모씨(32)가 입에 피를 흘리며 신음중인 것을 주인 배모씨(57)가 발견, 병원으로 옮겼으나 곧바로 숨졌다. 경찰과 미군범죄수사대(CID)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당시 함께 있던 미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추정, 곧바로 수사에 나섰고 사건 발생 이틀 만인 21일 경기 파주시 미8군 47기갑대대 소속 크리스토퍼 매카시 상병(22)을 검거, 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

이번에 피살된 김씨는 90년대 들어 미군이 저지른 살인사건의 7번째 희생자가 됐다. 법무부 집계에 따르면 한미행정협정이 개정된 91년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범죄는 연평균 770여건에 이른다. 지난해 주한미군이 저지른 살인 강도 절도 등 강력범죄만도 살인사건 1건을 포함해 175건에 이른다(경찰청 집계). 이는 98년의 138건보다 27%가 늘어난 수치.

경찰청 관계자는 “반미 분위기가 확산된 90년대 이후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최근 한국측 사법권의 허점을 악용한 미군들의 교통사고 범죄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들은 한미행정협정의 불평등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의 사법권행사가 제한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미군범죄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67년 체결된 한미행정협정은 한국 내에서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를 규정한 협정으로 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6·25전쟁 이후 끊이지 않는 미군범죄로 국민여론이 악화되자 체결된 이 협정은 반미의식과 미군범죄에 대한 사회적 비난여론이 확산되면서 91년 개정됐다. 하지만 한차례 개정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들은 이 협정이 일본 유럽 등이 미국과 맺은 협정에 비해 주권국가로서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불평등 협정이라며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부분은 한국정부의 형사재판권 행사의 제한. 협정에 따르면 정부는 재판권을 갖는 사건에 대해서도 미국이 요청하면 재판권 행사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91년 이후 한국측이 미군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한 사건은 연평균 27건으로 전체 사건의 3%에 불과하다.

또 미군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즉 미군측이 피의자의 신병인수를 주장하면 최종재판을 거쳐 형이 확정된 뒤에야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군과 미군속 피의자의 경우 미군측 동의가 없으면 한국 사법당국에 의한 구속수사는 재판이 종결될 때까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셈이다.

이번에 체포된 매카시상병의 경우도 살인사건 피의자임에도 한국 경찰은 그를 경찰서로 불러 조사한 뒤 미군 영내로 다시 돌려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법학자들은 “초동수사가 중요한 강력사건도 원천적으로 구속수사가 어렵기 때문에 증거인멸이나 알리바이 조작 등이 얼마든지 가능해 수사에 지장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측 수사당국의 조사도 미군헌병의 입회 하에서만 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미군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붙잡히더라도 자신들이 미군시설에 구금된다는 점과 미군 관계자들이 참여한 조사만 증거로 인정된다는 점을 악용, 우리 수사기관의 조사에 비협조적이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 일쑤”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법학과 성재호(成宰豪)교수는 “한미행정협정은 체결 당시부터 우리측의 준비부족으로 많은 조항이 미군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기 때문에 미군혐의자들이 쉽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어 범죄예방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협정내용 중 문제 있는 부분은 사회여건의 변화에 따라 합리적으로 개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 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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