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급증하는 연예인 소송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최진실 고소영 이승연 채시라 배두나 허영란 김민종 이태란 추상미 송승헌 황인정 H.O.T. 유승준 엄정화 이승환 한스밴드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연예계 스타’라는 점 외에 계약분쟁, 초상권 침해, 명예훼손 등 각종 소송의 원고 또는 피고라는 점이 같다.

연예인 소송이 크게 늘고 있다. 법조계는 지난해 한 해 동안만 연예인 소송이 50건 이상 제기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연예인 소송의 유행 ▼

인기가수 유승준씨는 22일 자신이 출연한 TV광고 음악과 화면을 아무런 상의없이 음반으로 무단 제작해 시중에 유통했다며 삼성전자와 신나라뮤직을 상대로 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연예인 소송 중 가장 많은 것이 이같은 계약위반 사건이다. 탤런트 최진실씨는 계약기간이 몇 년 전에 끝난 모화장품회사가 최근까지도 자신의 사진을 포장 박스에 붙인 것을 발견하고 “중단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항의해 사태를 해결했다.

배두나 김민종 이태란 추상미 송승헌씨 등은 전 매니저나 소속사 등으로부터 계약위반으로 피소된 경우. 추상미 송승헌씨는 최근 각각 6000만원, 1억여원의 패소 판결까지 받았다.

초상권 분쟁도 많다. 모방송사 시트콤드라마에 ‘허간호사’로 출연하고 있는 허영란씨는 지난해 모 한복 디자이너 등을 상대로 7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허씨가 잡지 모델용으로 찍은 한복 사진을 무단으로 한복 광고 전단에 싣는 바람에 초상권을 침해당했다는 것.

인기그룹 H.O.T.는 자신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게재한 잡지사에 소송을 제기해 1억57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인정받는 승소 판결을 받기도 했다.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신인 스타들은 매니저와의 속칭 ‘노예계약’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한다. 90년대 중반 잘생긴 외모, 탁월한 춤과 노래 솜씨로 인기를 끌었던 가수 K씨의 1, 2집 음반은 총 100만장 가까이 팔려 수십억원의 수익을 올렸지만 K씨가 매니저로부터 받은 것은 현금 500만원과 국산 스포츠카 한대가 전부.

매니저와 신인 스타들간의 이같은 불평등 불공정 계약이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됐던 한스밴드 사건도 비슷한 맥락.

그러나 매니저들은 “신인 스타들이 ‘올챙이’때 생각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가수 매니저생활 5년째인 H씨(33)는 “1년에 1500개 정도의 음반이 나오지만 그중 ‘대박’을 터뜨리는 것은 수십 개에 불과하다”며 “연예산업만큼 ‘불량률’이 많은 분야도 없는데 일부 신인 스타들은 그 리스크를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 소송 증가의 배경 ▼

연예계와 법조계는 한결같이 “그야말로 모든 게 돈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98년 국내음반시장은 3530억원, 비디오시장은 3090억원 규모. 같은 해 영화 입장료 수입은 2583억원에 달한다.

한편의 영화가 자동차 수백만대보다 많은 이익을 남기는 현실에서 연예산업이 수익률 높은 비즈니스로 자리잡은 것. 따라서 돈에 얽힌 분쟁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법조인들의 지적.

또 공중파TV, 케이블TV, 위성TV나 카세트테이프, LP, CD, MP3에 이르기까지 탤런트나 가수 등이 자신의 얼굴이나 노래를 팔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그 값어치의 확대 재생산이 무궁무진한 것도 큰 요인.

최근 음반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조성모의 리메이크곡모음 ‘가시나무’가 뒤늦게 저작권료 시비에 휘말린 것은 무형의 재산인 저작권이 끊임없이 이윤을 창출하기 때문에 생긴 일.

한 방송전문가는 “청소년의 희망 직업 1위가 ‘연예인’으로 나오는 등 연예인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진 것도 그들의 권리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전망 ▼

대표적인 연예인 전문 변호인인 최정환변호사는 “88년 영화 음반 시장 개방 이후 연예산업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그 종사자들의 의식은 선진국에 비해 낙후돼 있는 게 현실”이라며 “모든 분쟁이 주먹구구식 계약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공정하고 철저한 계약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예산업이 발달한 미국의 경우, 연예인 전문 변호사(엔터테인먼트 로이어)가 영화 음반 공연 방송 출판 등 전문분야로 세분돼 각종 계약의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작곡가가 노래 한 곡의 판권을 팔 때 모든 조건을 염두에 두고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계약서가 수십쪽에 달한다.

<부형권·김승련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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