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母女살인사건, 모의 화재 실험 실시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한국판 ‘O J 심슨’사건으로 불리는 서울 은평구 불광동 치과의사 모녀사건의 진범을 가리기 위한 모의 화재실험이 24일 오후 경기 용인시 경기 소방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됐다.

화재 실험은 검찰관계자가 모델하우스의 안방 장롱에 걸린 옷가지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장문을 굳게 닫으면서 시작됐다. 불길은 화학섬유로 된 옷을 타고 2분 만에 6평 크기의 안방 천장으로 옮아붙었다. 1분 후에는 방안에 연기가 가득했고 곧이어 시커먼 연기가 모델하우스 밖으로 새어나왔다. 실험시작 6분 만의 일이다.

피고인 이도행(李都行·36)씨의 무죄를 주장하며 5년 가까이 변호해 온 김형태(金亨泰)변호사는 “연기, 연기가 새어나온다”며 탄성을 질렀다.

이날 실험은 96년 말 아내와 한살배기 딸을 살해한 뒤 불을 질러 범죄를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씨가 진범인지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다.

실험의 핵심쟁점은 불을 붙인 뒤 2시간 가량이 지나서야 불길이 제대로 피어오르는 ‘지연 화재’가 가능한지 여부. 검찰은 외과의사인 이씨가 지연화재를 충분히 생각해낼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이 있다고 봤었다.

95년 6월 사건 당시 아파트 경비원이 모녀가 살해된 뒤 불에 타고 있는 상황을 목격한 시간이 오전 9시10분. 이씨는 당시 “오전 7시쯤 출근했다”며 어떻게 2시간이 지나서야 불이 붙는 지연화재를 일으킬 수 있느냐고 맞섰다.

수사기관은 당시 지연화재는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보험협회가 만든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는 발화장소 주변온도 등 피해상황을 입력한 결과 방화시간이 오전 7시 이전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김변호사는 실험이 끝난 직후 “이로써 검찰의 유죄주장은 근거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녹화테이프를 법원에 감정증거로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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