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한국인 납치공포]조선족 범죄 급증…밤길 겁난다

  • 입력 2000년 3월 1일 19시 31분


《중국에서 한국인들은 ‘봉’이다. 외국인 상대 범죄의 피해자 70%가 한국인이다. 돈 씀씀이가 헤프고 과시욕이 강하고 조선족에게 군림하고…. 유독 한국인들이 납치 강도 살인 등 범죄대상으로 지목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이야기다. 정부당국의 안전대책 부재 속에 위험에 노출된 중국 체류 한국인들의 피해실태, 조선족의 범죄수법, 그리고 중국 체류 중 범죄 예방법을 살펴본다.》

▼피해실태-범죄수법▼

베이징(北京) 차오양(朝陽)구의 샤오량마허차오(小亮馬河橋). 돈벌이 나온 조선족 동포들이 몰려들면서 ‘가오리춘(高麗村)’으로 불리게 된 곳이다. 어둠이 깔리면 이 거리는 ‘야하게’ 차려입은 ‘샤오제(小姐·아가씨)’들로 가득찬다. 인근 가라오케에 출근하는 조선족 여종업원들이다.

고려촌 주변 반경 1km 지역은 한국인들이 밀집한 지역. 한국대사관과 영사관, 베이징에 진출한 한국기업 다수가 이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음식점과 가라오케 사우나 등도 곳곳에 들어서 있고 한국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베이징 내의 작은 서울’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곳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각종 사고가 빈발해서다. 한국인과 조선족, 술과 돈, 가라오케 아가씨들과 이들을 쫓아온 조선족 청년들이 뒤섞이면서 이 일대를 중심으로 범죄사건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2월초에는 귀순자 조명철(趙明哲·41)씨 등 2명이 이곳 부근의 가라오케에서 여종업원이 낀 조선족 4명에게 납치됐고 1월 중순에는 이곳 주변의 또다른 가라오케에서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 집단난투극도 벌어졌다. 베이징에서 사업을 하는 김모씨(43) 등 4명이 가라오케에 들어서다 조선족 청년들과 부딪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말다툼 끝에 이들은 주변의 고려촌에 있는 ‘원군’ 10여명을 불러와 한국인들을 상대로 집단폭행을 가했다. 그 직후에는 모그룹 주재원이 가라오케 여종업원을 따라 이 곳에 들어섰다가 지갑을 통째로 빼앗겼다.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의 갈등은 중국에서도 상당히 심각한 편이다. 얼마전에는 항저우(杭州)에서 사업하던 한국인 송모씨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던 조선족 직원에게 피살당했다.

또 98년 말에는 한국인 사업가 김모씨(50)의 여행사에 근무하던 조선족 직원이 칭화(淸華)대에 재학중이던 김씨의 아들을 납치해 돈을 요구한 사건도 일어났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선족 범죄의 배경에는 한국인들과 조선족 사이의 뿌리깊은 불신과 경시풍조가 깔려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국인들은 조선족 동포들을 무능력하며 게으르고 자기이익만 밝히는 존재로 보는 반면,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인이 늘 거만하고 사람을 무시하며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이에 따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선족들의 범죄도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 강도 등 사건 사고는 모두 182건. 이중 살인과 납치 강도 등 강력사건이 21건에 이른다. 그러나 올들어 지난 두달간 일어난 강력사건만 모두 8건.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범행수법도 흉포화 고도화하고 있다. 칭다오(靑島)에 거주하는 마모씨(36)는 1월 중순 고려촌 부근의 한국음식점에서 한국인 4명과 함께 식사하던 중 느닷없이 칼에 찔렸다. 강도들은 한마디 말도 않고 다짜고짜 마씨 등을 찌른 뒤 이들의 가방과 소지품 등을 털어 달아났다.

지난해 11월에는 고려촌 인근에서 사업하는 한국인 김모씨(57) 가게에 장총과 일본도를 든 4인조 강도가 들었다. 이들은 김씨 등 한국인 2명을 칼로 긋고 개머리판으로 내리쳐 큰 상처를 입혔다.

사람을 납치할 경우에는 유인책으로 중간에 여자를 끼우는 수법을 흔히 사용한다. 지난해 11월 납치됐던 한국인 소모씨(50)와 김모씨(48)도 이같은 사례. 단둥(丹東)에서 가라오케를 경영하던 이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마담으로부터 “아가씨 20명을 모아놨으니 데려가라”는 말을 듣고 다롄(大連)으로 갔다가 4명의 범인들에게 납치당했다.

또 귀순자 조명철씨 등은 술시중을 들던 가라오케 여종업원의 말에 넘어가 숙소에 따라갔다가 납치됐다.

사기 수법도 고도화되고 있다. 이들은 흔히 여행가이드를 가장해 접근했다가 호텔수속을 한다거나 항공표를 싸게 사준다는 등의 수법으로 한국관광객들의 여권과 금품을 가로채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중국사회과학원 한국유학생들의 여권을 사취할 때는 학교당국조차 속이는 기상천외한 수법을 구사했다. 이들은 미리 학교측과 교섭, “3000자 내외의 여행기를 써내면 무료 관광여행을 시켜준다”고 학교측이 공고까지 내도록 해 한국학생들의 여권을 가로채기도 했다.

한국인 여권은 중국에서는 5만위안(700만원)을 호가한다. 이 때문에 한국인 여권을 노린 강도사건도 급증하는 추세.

범행이 조직화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주로 4인1조로 움직이며, 유기적인 역할분담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강도의 경우에는 범행현장을 수차례 탐방한 끝에 범행 당일 한명은 자동차담당, 또 한명은 문앞에서 망을 보며 두명이 들어가 신속하게 목적을 달성하는 수법을 즐겨 사용한다. 이 때문에 납치범들과 달리 이들 강도조직들은 중국공안에 검거되는 비율이 훨씬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들 범죄조직들은 중국에서 ‘헤이서후이(黑社會)’로 불리는 이른바 보다 큰 조직폭력배들과 연계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보다 큰 조폭의 하부조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들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 조직폭력배들과 연계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 ljhzip@donga.com

▼왜 한국인이 당하나▼

지난해 중국에서 발생한 한국인 관련 사건 사고는 182건. 전체 외국인 관련 사건 사고의 70%를 차지한다.

▽폭탄주 마시고 흥청망청

한국인 관련 사건 사고가 많은 것은 한국인들의 음주문화와 과시욕, 안전불감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인들은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2차, 3차에다 폭탄주까지 마신다. 이러다 보면 말도 격해져 싸움도 쉽게 일어나고 지갑도 쉽게 털릴 수밖에 없다.”(I가라오케 조선족 종업원)

▽"돈많다"과시 지갑 털려

술에 취한 채 택시로 베이징시내를 이리저리 돈다든지, 이른 아침 베이징 외곽의 한적한 곳 길바닥에서 깨어나는 사례도 더러 발생한다. 지갑은 물론 소지품이 온전할 리 없다.

말이 통한다고 조선족 동포들을 너무 쉽게 믿는 경향도 사고를 부채질하고 있다. 주중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한국인 관련 사건 사고의 거의 대부분에 조선족이 관련돼 있다”며 “납치나 사기사건의 절반 이상이 잘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족 너무 쉽게 믿어

가라오케 여종업원의 숙소에 무턱대고 따라가거나 외국인의 숙박이 금지된 싸구려 민박집을 찾는 등 한국인들의 경계심 부족도 사고를 초래하는 주요 요인.

지난해 12월 중국인 조선족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베이징에 온 강모씨(39)는 우연히 만난 조선족의 소개로 민박집에 들었다가 그날 저녁 바로 흉기를 소지한 강도들에게 금품과 소지품을 몽땅 빼앗겼다. 조선족이 많아 마치 한국처럼 생각하고 방심한 나머지 이 같은 사고가 빈발한다는 것이다.

▽거만한 말투 반감 부채질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인들이 조선족 동포들의 반감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월급이 얼마냐고 묻고는 그걸 월급이라고 받느냐는 투로 거만하게 말하면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I가라오케 조선족 종업원)

“때가 되면 월급을 줘야 하잖아요. 월급 달라는데 네가 돈 쓸데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런 한국 사장님이 있어요.”(M음식점 종업원)

일부 한국인들의 조선족 경시풍조와 거만한 언행이 자주 범죄의 발단이 된다는 것이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 ljhzip@donga.com

▼中체류시 주의사항▼

중국 체류시 어떻게 하면 납치나 살해, 강도를 당하지 않을까.

중국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무허가 숙박업소나 민박 등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요금이 좀 비싸더라도 외국인 투숙이 허용된 관광호텔 등에서 숙박을 하라는 것. 이런 호텔 등엔 경비원이 24시간 상주하고 중국 공안당국의 협조를 받기도 수월하다.

또 낯선 사람과의 접촉을 삼가고 외출시에는 가능한 한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다니는 게 좋다. 특히 700∼800달러를 호가하는 한국인 여권은 범죄조직의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되 외출시엔 아예 복사본만 가지고 다니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는 것이 영사관측의 조언이다.

과도한 현금이나 금품을 갖고 다니지 않는 것도 명심할 사항. 특히 자신의 신분이나 경제력을 과시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그리고 야간에는 납치 등 범죄 발생의 우려가 있는 가라오케 사우나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의 출입이나 2차 3차식의 과음을 자제하고 비상시 반드시 연락할 수 있는 비상망을 미리 준비해두는 것도 요령이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외국은 어떻게 대처하나▼

조선족의 한국인 납치가 잇따르고 있지만 정부당국은 팔짱만 낀 채 방관하고 있다는 비난이 높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나라처럼 자국민 보호에 소홀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국민 보호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로 손꼽히는 미국의 경우 해외에서 자국민에 대한 테러나 납치 등 비상사건이 발생하면 문제해결을 위한 외교적 교섭과 함께 곧바로 경보를 발령하는 게 큰 특징이다.

미 국무부는 대국민 경고문을 통해 위험상황을 알리고 사안에 따라 △해외여행 주의 △해당국 입국통제 △자국민 철수 △군사행동 등의 조치를 즉각 단행하고 같은 내용을 동시에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테러나 예상되는 위험에 대해서도 충분한 사전경고가 이뤄진다. 실제 지난해 7월 미국 전투기가 유고 폭격도중 중국대사관을 오폭해 중국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미국 정부는 ‘중국 여행시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여행자제 요청과 함께 중국입국을 통제했었다.

일본도 미국과 비슷해 정정이 불안한 국가에 대해 대국민경고와 함께 여행금지 및 대피령을 신속히 발령한다. 실제 98년5월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정권이 붕괴될 즈음 정정불안이 계속될 조짐을 보이자 일본정부는 즉각 현지에 있는 자국민과 주재기업 관련자를 모두 본국으로 철수하도록 했다.

일본은 이와 함께 사건이 발생한 국가를 상대로 드러나지 않게 경제원조 등을 제시하며 신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물밑 외교접촉’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럽지역의 국가 대부분도 자국민보호를 위한 대응방법이 미국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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