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광씨(23·고려대 경영 3)는 이번 학기에 휴학계를 냈다. 지난 학기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듣다 번뜩 떠오른 인터넷 사업 아이디어를 졸업 후까지 미룰 수 없었다. 이미 1월에 인터넷 벤처기업 ‘IT-팩토리’를 창업했다.
그는 “혹시 졸업을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큰 아쉬움은 없다”며 “대학졸업장 같은 간판이 중시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권현진씨(20·서울대 기계공학부 2)는 지난해 9월 같은 대학의 동아리 친구인 김진산(21·컴퓨터공학과 3), 홍승희씨(21·전기공학부 3)와 청소년을 위한 포탈사이트 ‘아이틴’을 만들었다.
권씨와 김씨는 지난해 8월 휴학계를 내고 홍씨만 최소 학점만을 수강하며 ‘버텨왔지만’ 학업은 이미 ‘개점 휴업’ 상태. 권씨는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창업을 서둘렀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이 국내 경제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면서 벤처 창업을 위해 휴학하는 대학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
서울대공대의 경우 1997년 650명(전체의 9.6%)에 불과했던 휴학생이 1998년 837명(12.3%) 1999년 1287명(18.75%)으로 급격히 늘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사 과정의 휴학생은 97년 122명(전체의 4.9%), 98년 153명(5.3%), 99년 174명(7.0%)이며 포항공대의 경우도 97년 411명(13.8%)에서 98년엔 526명(18.0%), 99년 631명(21.0%)으로 꾸준히 증가중. 연세대공대의 휴학생 비율은 41.6%(97년)→48.3%(98년)→55.2%(99년). 올해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휴학생이 더 늘었으며 이 가운데 벤처창업을 위한 휴학이 상당수라고 학교측은 추정하고 있다.
서울대경영대도 군입대를 제외한 다른 이유로 휴학한 학생이 97년 40명에서 지난해 95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고시준비나 질병 등 다른 원인을 감안하더라도 창업을 위한 휴학도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포항공대의 학사관리팀의 한 관계자는 “군입대를 위해 휴학한 경우에도 상당수가 벤처 병역특례업체로 빠져 군복무를 하며 실전경험도 동시에 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새로 병역특례업체로 선정된 업체 2229개 중 368개(16.5%)가 벤처업체라고 병무청은 밝히고 있다.
학생들의 벤처창업을 돕기 위해 아예 학제를 개편한 대학도 생겨났다. 전북 우석대의 경우 국내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이번 학기부터 창업활동 자체를 학점으로 인정한다. 학적수업과 송영대씨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창업을 위해 강의를 듣지 않아도 학기당 최고 18학점(단 4년간 총 36학점)을 인정하는 ‘창업학점실습제도’와 군에 다녀온 학생 중 창업한 학생에게 1∼3년 휴학할 수 있는 창업학생지원제도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한국과학기술원은 이번 학기부터 벤처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 기존 벤처업체에서의 실무경험을) 학점으로 인정한다. 학사과정 3,4학년생은 벤처협회에 등록된 929개 벤처업체에서 6개월간 일하면 6학점을 이수하게 된다.
이처럼 벤처로 인해 대학생들이 학문의 길을 접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대학의 학문하는 분위기를 망치는 ‘아카데미즘 해저드’(향학심의 해이)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빌 게이츠가 대학을 휴학하고 마이크로 소프트사를 설립했듯이 대학생들의 벤처 창업붐은 당분간 식지 않을 전망이다.
<이나연·이헌진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