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제자 벤처기업 돕는 서울대 '엔젤교수님들'

  • 입력 2000년 3월 10일 19시 21분


‘교수는 제자들을 위한 엔젤 투자가.’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부 교수 51명 가운데 30명이 수십억원 규모의 ‘벤처 캐피털’ 회사를 창업했다. 국내에서 교수들이 벤처 캐피털사를 만들기는 이번이 처음. 이들은 자금뿐만 아니라 특허출원 투자유치 등 창업과 성공을 위한 ‘토털 솔루션’을 공짜로 제공하고 이익이 발생하면 절반 가량을 공익을 위해 기증하겠다는 내용을 정관에 못박아 눈길을 끌고 있다.

유일한 조건이라면 ‘서울대 전기공학부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주도해 움직이는 벤처기업일 것’. 창업 초기이니만큼 무분별하게 지원대상을 확대할 수 없는데다 제자들에게 우선 혜택이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기 때문.

서울대 전기공학부가 들어선 301동 건물에서 이름을 따와 3월초 ㈜서전301이라는 이름으로 법인등록까지 마친 이 회사는 제자들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 벤처기업을 만들고 고생 끝에 성공을 일궈내도 그들의 몫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안타까움에서 출발했다.

아이디어와 기술, 노력을 쏟은 학생들이 엔젤 투자가들의 자금력에 휘둘려 ‘재주 부리는 곰’이 되는 현실을 보고 지난해 8월 김원찬(金元燦)교수 등이 발벗고 나섰던 것.

김교수는 “학생들이 벤처열풍 속에 너도나도 창업에 나서지만 특허문제나 투자유치문제는 물론 기술력에서도 부족할 때가 많다”며 “제자들이 자신있게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성굉모(成宏模)학부장 교수를 포함한 교수 대부분이 이 의견에 동조했다. 이들은 지난 6개월 동안 ‘제자 사랑’ 정신 위에서 공익을 우선시하는 정관을 마련하고 사업규모에 대해서도 토론을 거듭했다.

그 결과 지분의 47%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위한 장학법인에 기증하고 틀이 잡히면 공익 재단을 설립해 사회에 환원한다는 정관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교수 1인당 1000만원씩 3억원의 초기 자본금을 마련하고 교수 2명이 관악구 봉천동 관악구청 맞은편의 5층 빌딩을 구입해 5년 동안 무상임대하는 조건으로 선뜻 내놓았다. 또 다른 교수들도 앞다퉈 자신들이 보유한 1주당 20만원 이상의 벤처기업 주식 8000주를 기증, 결국 20억원이 넘는 자금을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빌딩에 초고속 통신망을 설치하고 당구장 커피숍 등 휴게시설을 완비한 뒤 18일까지 대상자 모집에 들어갔다.

김교수는 “돈키호테적인 시도일지도 모르나 교수는 제자의 창업과 성공에 일정 정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라며 “이들이 재학 중에는 학업에도 열중하도록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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