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회사 이름을 표기하는 도메인이 중요한 무형의 자산으로 부각되면서 자사(自社)의 상표를 도메인으로 선점당한 대기업들이 상표권 침해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분쟁 현황〓현재 소송이 제기됐거나 준비중인 사건만 10여개에 이른다.
소송제기의 사유는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상표를 도메인으로 사용하는 것이 부정경쟁 또는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것.
학계와 업계에서는 이같은 ‘저명상표와 도메인 네임의 충돌’이 점점 격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도메인 이름을 정하고 등록대행업체에 등록을 의뢰했는데 의뢰받은 업체가 등록을 미루는 사이 다른 사람이 같은 이름으로 등록을 해버려 손해배상 문제가 생긴 경우도 있다.
도메인 등록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한국인터넷정보센터(KRNIC)의 분쟁위원회는 매주 10여건 이상의 도메인 분쟁 문의가 들어온다고 밝혔다.
KRNIC는 이에 따라 17일 정강법률포럼(대표 조소현·曺沼鉉 변호사)과 ‘도메인 관련 분쟁 공동대응에 관한 협정’을 체결, 분쟁 상담 및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엇갈리는 판결〓지금까지 나온 도메인 분쟁과 관련된 판결 및 결정은 모두 3건. 서울지법은 지난해 10월 프랑스 샤넬사가 자사 상호가 들어간 인터넷 주소(www.chanel.co.kr)를 등록한 뒤 향수와 성인용품 등을 판매해온 김모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김씨는 도메인 등록을 말소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지법은 또 2월 대우전자의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하이마트(HI-MART)가 ‘himart.co.kr’라는 도메인을 사용하는 인터넷 쇼핑몰업체를 상대로 낸 가처분 사건에서 “정식 판결이 날 때까지 일단 himart라는 도메인을 사용하지 말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서울지법 동부지원은 최근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 제조회사인 화이자가 인터넷에 ‘비아그라’라는 주소(www.viagra.co.kr)를 등록해 생칡즙 등을 판매해온 권모씨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화이자측에 패소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권씨 등은 일단 문제의 도메인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샤넬사건에서 재판부는 김모씨가 샤넬사와 비슷한 종류의 제품을 인터넷 상에서 판 것이 ‘상품주체 또는 영업주체의 혼동’(부정경쟁)에 해당한다며 부정경쟁방지법을 적용했고 비아그라 사건에서는 비아그라와 생칡즙은 전혀 다른 제품으로 혼동을 일으킬 위험이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비아그라 판결’에 대해 저작권 전문가들은 “다른 종류의 상품을 다루는 경우에도 기존상표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거나 넓은 의미에서 혼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부정경쟁의 소지가 있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사례〓도메인 선점자와 상표권자의 분쟁이 심각해지자 미국 하원은 지난해 10월 ‘사이버상의 해적행위 규제법’을 제정, 투기목적으로 기존 상표를 인터넷에서 무단점유하는 사람에 대해 10만 달러 이하의 손해배상 책임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하버드대학은 ‘harvard’라는 이름을 등록한 뒤 돈을 요구한 ‘웹 프로’사를 제소했다.
그러나 이 법에 대해 네티즌들은 “사이버 공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대기업과 기득권자의 이익을 옹호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악법(惡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수형·신석호기자> 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