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사소송 시효 조정 의미]피해자 배상 길 열렸다

  • 입력 2000년 3월 15일 19시 21분


법원이 15일 5·18 민주화운동 관련 해직교사의 손해배상 사건에서 조정결정을 통해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가 95년까지 정지됐다고 판시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선 5·18 피해자에 대한 민사적 구제, 즉 재산상 손해 배상의 길이 트였다. 80년 신군부 집권과정의 불법행위에 대한 ‘원상회복’은 크게 두가지, 형사적 구제와 민사적 구제의 양 측면으로 나뉘어 진행돼 왔다.

이중 형사적 구제는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사실상 완결됐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 등 5·18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97년 4월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가해자’에 대한 단죄는 완결됐다. 이후 5·18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됨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도 이뤄졌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정작 중요한 재산반환 등 민사적 구제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소멸시효’의 법리에 법원이 지나치게 얽매여 기계적인 판단을 내렸기 때문. 대법원은 5·18사건이 불법행위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일관되게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패소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판단근거는 이렇다. 80년 신군부는 피해자들에게 ‘강박’을 가해 재산을 빼앗았는데 이는 민법 제110조의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취소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취소권은 취소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여기서 ‘취소할 수 있는 날’의 기산점(起算點·시작 시기)을 신군부의 비상계엄이 끝난 81년 1월 24일로 보았다. 따라서 취소권(또는 손해배상 청구권)은 3년이 지난 84년 1월 소멸됐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5·18 관련 민사 사건에서 이같은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왔으며 이에 따라 피해구제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조정결정을 통해 “5·18 관련자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를 마련한 95년 12월 5·18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피해자도 감히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 기간 중에는 소멸시효가 정지된다”는 견해를 처음으로 나타냈다. 이에 따르면 소멸시효는 95년부터 시작되므로 3년 이내인 98년 12월까지 소송을 낸 피해자들은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겼으며 재판이 진행 중인 동아일보의 동아방송 반환소송 등 유사 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98년 12월 이전에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인 해직교수와 교사가 2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배상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인들은 이같은 견해가 지극히 당연하고 실체적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종훈(金宗勳)변호사는 “국가(검찰)가 95년 12월 특별법제정 당시까지 5·18관련자들을 기소하지 못하는 사정(국가 소추권의 장애)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개인(피해자)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었다는 점(소멸시효의 정지)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이번 결정은 그 효력이 다른 사건에 직접 미치지 않는 조정결정에 불과하지만 5·18사건의 실질적 피해구제의 길을 최초로 열어놓은 획기적 결정이라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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