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국경없는 '사이버 성추행' 극성

  • 입력 2000년 3월 16일 19시 35분


여성 네티즌을 노린 ‘사이버 성추행’이 국경을 넘나들며 극성이다.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 채팅이 보편화되면서 외국인들이 국내 여성 네티즌에게 접근해 노골적이고 가학적인 유혹과 성희롱을 하는 등 성(性)폭력 피해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점을 악용해 한 여성을 골라 집요하게 치근대는 ‘사이버 스토커’까지 등장하고 있다.

‘사이버 성추행범’들은 인터넷 국제대화방이나 최근 급속히 확산 중인 ‘전자쪽지 서비스(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은밀하게 수작을 벌이고 있다. 이 서비스는 인터넷을 통해 가입자 상호간에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으로 컴퓨터를 켜면 바로 화면에 메시지가 뜨고 답장도 즉시 보낼 수 있어 휴대전화와 함께 ‘N세대의 필수항목’으로 각광받는 신종 의사소통 수단.

▼전자쪽지로 온라인 수작▼

▽실태〓주부 C씨(29)는 얼마 전 국제채팅을 하다 낯뜨거운 경험을 당했다. 인터넷관련 일을 하는 캐나다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외국인은 처음에 “무슨 일을 하느냐” “한국은 어떤 나라냐”며 말을 건넸다. 조씨는 “가정주부이며 한국은 5000년 역사를 가진 전통의 나라”라고 대답했다. 외국인이 돌변한 것은 두세 차례 대화가 오간 뒤였다.

그는 갑자기 “한국여자들은 섹스에 무감각하다는데 가르쳐 줄 용의가 있다”며 “몇 달 뒤 한국에 가는데 한번 만나지 않겠느냐”고 치근거렸다. 조씨가 대답을 거부하자 캐나다인은 음담패설을 하며 계속 유혹했다. 조씨는 얼굴이 화끈거려 대화방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인터넷 회사에 근무하는 S씨(30·여)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S씨는 노골적인 성추행 메시지가 담긴 전자쪽지를 외국으로부터 하루에 평균 3건 이상 받고 있어 메신저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겁날 정도.

S씨의 경우 서비스에 등록하면서 여성신분을 밝힌 게 화근이었다. 가입 직후부터 전세계에서 남성들의 전자쪽지가 쇄도한 것. 이들 중 상당수는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성적(性的) 호기심을 나타내며 “현재 한국의 모호텔에 있으니 오겠느냐” “한번 만나서 얘기하자” “사이버섹스를 하자”며 접근해 왔다.

점잖게 접근하다 이내 본색을 드러내는 ‘양의 탈’을 쓴 ‘늑대’도 많다. S씨는 “쿠웨이트 남성이 전자쪽지를 보내와 처음엔 ‘동종직업을 갖고 있어 반갑다’고 말을 건네다가 대화가 몇 번 오가자 ‘남편과 하루에 몇 번 잠자리를 하느냐’고 물어와 얼른 대화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K씨(27·여)는 요즘 ‘사이버 스토커’의 전자쪽지 때문에 아예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 얼마 전 컴퓨터작업을 하던 중 전자쪽지가 오자 ‘바빠서 나중에 답신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바로 ‘네가 얼마나 잘났기에 쪽지를 보지 않느냐’며 성희롱과 갖은 욕설을 담은 전자쪽지가 들어왔다. 그 후 K씨는 10여일간 그 사람으로부터 하루에 몇 차례 같은 내용의 전자쪽지를 받아야 했다.

▼범인찾기 거의 불가능▼

▽대책〓이처럼 ‘사이버 성추행’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정작 ‘범인’을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실정. 인터넷 대화방과 전자쪽지 등이 철저히 ‘개인적인’ 공간인데다 성추행범들은 대부분 자신의 신분을 거짓으로 등록하기 때문. 게다가 메시지의 출처가 외국이어서 설령 적발하더라도 국내 사법기관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는 것도 한 이유다.

이에 따라 관계기관 역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정보통신부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대화방과 전자쪽지 등은 ‘개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솔직히 외국으로부터 오는 성추행 메시지를 걸러낼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경찰 역시 “피해 당사자의 신고가 없는 한 수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 이와 관련해 인터넷 전문가들은 “일단 대화방을 선별해 들어가거나 서비스 등록시 여성신분을 밝히지 않는 게 가장 좋으며 만약 사이버 성추행을 당했을 경우 바로 대화방을 빠져나오거나 메시지를 삭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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