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살해 중학생 최모군]"흉포한 아버지가 미웠어요"

  • 입력 2000년 3월 19일 19시 59분


가정불화의 분풀이로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얼굴도 모르는 여중생을 살해한 최모군(15·E중 3년)은 살인범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앳된 소년이었다.

“‘왜 우리 엄마만 고통받아야 할까. 다른 어머니는 다들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데’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평소 술만 마시면 어머니와 누나를 괴롭히는 흉포한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그런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뒤섞여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송모양(15·B여중 1년)에 대한 끔찍한 범죄로 폭발한 것이다.

“어머니는 목욕탕 때밀이까지 하며 고생하는데, 아버지는 바람 피우고 어머니에게 욕설까지 퍼붓고….”

최군은 범행 당일 아버지가 또 술에 취해 어머니와 누나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을 참지 못하고 대들다 자신의 학교성적을 들먹이며 다시 어머니를 몰아붙이는 아버지에 대한 분을 못참고 부엌에 있던 과도를 집어 들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분을 삭이지 못해 아파트단지 주변을 20여분간 배회하던 최군의 눈에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 학교에서 귀가 중이던 여중생 3명이 눈에 띄었다. 최군은 그 중 일행과 헤어져 혼자 아파트로 들어가던 송양을 뒤쫓아갔고 승강기 안에서 순식간에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엉겁결에 흉기를 내리쳤지만 피 흘리는 송양을 보며 너무 무서웠다”며 “아무에게도 내색할 수 없었지만 죄책감에 너무 괴로워 ‘차라리 죽어버리자’는 생각만 되풀이했다”고 울먹였다.

최군의 담임인 박모씨(38)와 전학을 오기 전 2학년 담임이었던 정모씨(37·여)는 모두 “최군이 성적은 하위권이었지만 교사들의 지시를 말 없이 잘 따르는 온순한 학생이었다”며 “그처럼 내성적이고 말 잘 듣는 아이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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